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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1. 2024

부사

    부사副詞를 무지하게 사랑한다. 오죽하면 부사만 다룬 책까지 샀을라구.(『의성의태어의 발견』, 박일환, 사람in, 2023)

   글을 쓸 때 부사가 주는 효용은 대단하다. 부사 하나가 한 문장 전부를 에워쌀 수 있다. 에워쌈이란 곧 입김인데 어떤 문장을 써서 표현하려는 바를 알토란 같은 부사 하나로 모두 드러낼 수 있다. 비단 문장뿐이랴. 시인이 애면글면 지은 시 한 수가 부사로 간파당할 수 있다. 


쫄딱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담너머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잠깐 사이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반갑고 당당할 줄이야



   계집아이가 '쫄딱'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시는 완전히 독해되었다. 이 얼마나 강하면서 기특한 단어인가. 그런 단어 예는 많다.


   * 김은 에멜무지로 갈았던 김칫거리가 때를 잘 타 이달은 벌이가 괜찮았다. (이문구)

   :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

   * 농군들은 우수, 경칩, 춘분, 청명-이렇게 풀풀 날아들어도 봄보리 때가 어느 땐지도 모르고 엄벙뗑 보내다가 떡 한식이 닥쳐야만 비로소, “어이쿠!” 하는 것이 보통이다.(이무영)

   : 어떤 상황을 얼김에 슬쩍 넘기는 모양

   * 상경할 때마다 구메구메 양식이랑 잡곡이랑 먹을 걸 날랐다.(박완서)

   : 남모르게 틈틈이

   

   부사 모으는 재미가 솔찮다. 모은 게 술술 나오면 더 재밌겠지만. 부사를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구사해서 문장을 맛깔나고도 풍성하게 지을 수 있다면 열 문호 안 부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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