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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5. 2024

음악 프로그램 게시판 글 남기기

   난생 처음 음악 프로그램 게시판에다 글을 남겼다. 전부터 마음먹은 바였는데 어제 새벽 출근하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글을 남긴 목적은 딱 하나다. 글 속에 있다.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침 6시 30분까지 점방에 당도하자면 늦어도 5시 40분에 차 시동을 켜야 합니다. 고로 <국악의 향기> 시작부터 끝까지 통째로 듣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에 애착을 느끼는 까닭은 바로 마감곡이 인상깊어서입니다. 

   KBS 아나운서이기도 한 DJ가 방송을 마무리하는 멘트를 치고 6시 시보가 울리기 직전 짧으면 2~3분, 길면 4~5분 자투리시간에 들려 주는 그날 마지막 곡에 오래 전부터 매료되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정통 국악 대신 퓨전 국악이 선곡되던데 담당자(프로듀서 혹은 작가 혹은 DJ)의 선곡 능력이 참으로 탁월한 게 단 한 번도 어김없이 귀에 쏙쏙 박힙니다. 청취자 마음에 쏙 드는 선곡 능력을 갖춘 프로그램이라면 1시간 꼬박 다 들어야 마땅하겠으나 제 딴에는 일정한 루틴이라는 게 있다 보니 그때 아니면 주의깊게 들을 수 없어 많이 아쉽고 송구합니다.

   이왕 게시판을 채우는 김에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오랫동안 KBS클래식FM을 듣고 있습니다만 주로 서양 음악에 경도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클래식FM에서 내보내는 방송 중 그쪽 비중이 커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음악이란 고리타분하다는 근거 없는 선입견이 완고하게 박혀 있어 썩 내키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습니다. <국악의 향기>를 본격적으로 듣기 전이니까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른한 늦은 오후였지 싶습니다. 가요도 아니고 민요도 아닌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데, 그날 처음 들었음에도 마치 예전에 들어봄 직한 익숙함으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 게 아닙니까! 이토록 이쁘고 아픈 노래가 세상에 다 있었나 싶어서 운전 중이었음에도 얼른 노래 제목과 부른 이를 메모해뒀더랬습니다. 바로 '사랑, 거즛말이'(소울지기)였고 퓨전 국악과 충격적으로 직면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마침내 인식의 전환이 이뤄졌지 싶습니다. 혹시 클래식(Classic)이란 음악을 그동안 편협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나 하는 자성 말입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해 클래식이 곧 고전음악이라고 한다면 그 영역 속에 우리 음악도 포함되어야 마땅한데 교향곡, 오페라는 되고 대취타, 판소리를 꺼린 까닭이 무엇일까. 익숙함과 근사함이 음악을 청취하는 데 중요한 잣대라고 한다면 이토록 세련되게 심금을 울려 버린 '사랑, 거즛말이'는 서양 음악일까 우리 음악일까. 관심을 두지 않아 몰랐던 우리 음악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퓨전 국악은 우리 음악 이해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로 적합할까. 생각은 의외로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우리 음악을 전과 달리 편견없이 접근하자고. <국악의 향기>는 그런 결심을 도와주는 소중한 길벗입니다. 우선 퓨전 국악부터 섭렵하려고 합니다. 우리 음악을 계승해 새로운 국악곡을 창작하고 장르 간 융합이 이뤄지는 다양성의 세계를 유영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접속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제 과문함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국악의 향기> 선곡 담당자의 광활하면서도 탁월한 안목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옛말 그르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난생 처음 음악 프로그램에 글을 쓰게 된 까닭입니다. 

   <국악의 향기>는 은하수에 떠있는 수많은 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우리 음악 아티스트와 명곡들을 어떻게 찾아냅니까? 선곡 담당자가 보유한 우리 음악 지식을 방출할 의향은 없습니까? 그 비결이란 게 있다면 답장 꼭 부탁드립니다. 게시판에다 답을 다는 게 거슥하다면 제 메일 주소를 남길 테니 꼭 부탁드립니다. 

   매일 일기처럼 끼적대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루는 <국악의 향기> 마감곡을 소재로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날 글의 마지막 대목은 이러했습니다. 


   곱디 고운 곡을 누가 지었을지 선곡표를 디다보면 도무지 낯설고 그 곡을 맛깔나게 연주하는 이들은 더 낯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생경하기 짝이 없는 곡들이 꼭 예전에 들어봄 직하게 친숙하다. 다 떠나서 고즈넉한 새벽녘 품에 폭 안겨 깊고 편한 꽃잠을 잠시 잔 듯한 안온함에 흐뭇하다. 면면히 흐르는 궁상각치우 유전자가 어디 가겠냐마는. 천상 한국사람.


   좋은 방송 내보내려고 매일매일 노심초사하는 모든 관계자분들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추신 1 - 조그마한 점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화요일 하루만 쉽니다. 그날만은 밀린 늦잠을 자곤 해 청취하질 못합니다. 화요일을 뺀 나머지 요일 듣는 5시 40분 청취시간을 앞으로 좀 당겨 보도록 애를 쓰겠습니다. 듣기 좋으라고 부러 꺼낸 아부일지언정 열성적인 청취자의 애교로 봐주십시오. 

   추신 2 - 신청곡을 받는다면 원곡자가 부른 '사랑, 거즛말이'를 오전 5시 40분 이후로 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추신 3 - 다시 밝히건대, 음악 프로그램에 감동해 글 써서 보낸 건 이번이 난생 처음입니다. 그러니 <국악의 향기>도 횡재한 겁니다. 이토록 열성적인 청취자를 확보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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