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하다 보면 이런 날이 있다. 들어오는 족족 사연 없는 손님이 없는 그런 날.
등짝에 'security'란 영문자가 박혀 있고 '항공보안'이란 부착물이 오버로크 되어 있는 유니폼을 입고 온 사내는 '압살'이란 살 떨리는 말이 입에 달렸다. 입바른 소리 했다는 이유로 사는 데에서 한참 떨어진 부산으로 원거리 발령을 낸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악전고투하는 벼랑 끝 투사의 외침이라 과격하긴커녕 짙은 호소력을 여운으로 남기지만 거대한 부정과 맞서 싸우기에는 사내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피곤이 그 끝이 썩 녹록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성치 않은 모친과 갓난이 때 이혼해 제 어미를 모르고 자란 열세 살 딸이 살고 있는 고향 대신 부산 한 동네 고시텔에 방을 얻어 사내는 살고 있다.
요요 현상으로 살이 오히려 더 찌는 바람에 결국 8백만 원 들여 지방흡입술을 택한 청년은 요리사라고 자신을 밝혔다. 오성급 호텔에서 근무했지만 비상식적인 처우와 불규칙한 생활 패턴 때문에 관둔 지 좀 됐다고 했다. 8백만 원이 큰 돈이긴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투자한 셈 치겠다고 했다. 대신 오성이든 육성이든 그 할애비가 됐든 호텔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자기가 겪어본 바로 번지르르한 겉과는 달리 중노동에 물건 취급 당하는 호텔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전향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면서. 청년은 곧 서면 부근 한 타이 식당으로 출근할 예정이라고 했다. 호텔 때와 근무시간은 똑같지만 휴식 시간도 더 많고 월급도 더 많다고 했다. 지방흡입을 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요리사 출신 손님은 또 있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잘나가던 요리사라면서 강남구 삼성동 주소가 떠억 박힌 사업자등록증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손님은 다 말아먹고 득병까지 해 부산 이 동네로 흘러 들어왔다고 했다. 갑장인데다 그 기구함이 측은했지만 위암인지 대장암인지 꽤 깊게 든 병중임에도 속이 상해 술을 마신다면서 1.6리터짜리 맥주를 패트째 나발 부는 꼴을 목격한 뒤로 스스로를 고문하는 사람하고는 상종하기 싫어서 요금 받는 깎새에 충실할 뿐이었다. 며칠 전 불쑥 들어와 머리 깎기를 청하는 손님 표정에 절절한 뭔가가 느껴졌지만 깎새는 짐짓 무심한 척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