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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26. 2024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장사를 하다 보면 이런 날이 있다. 들어오는 족족 사연 없는 손님이 없는 그런 날.

   등짝에 'security'란 영문자가 박혀 있고 '항공보안'이란 부착물이 오버로크 되어 있는 유니폼을 입고 온 사내는 '압살'이란 살 떨리는 말이 입에 달렸다. 입바른 소리 했다는 이유로 사는 데에서 한참 떨어진 부산으로 원거리 발령을 낸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악전고투하는 벼랑 끝 투사의 외침이라 과격하긴커녕 짙은 호소력을 여운으로 남기지만 거대한 부정과 맞서 싸우기에는 사내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피곤이 그 끝이 썩 녹록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성치 않은 모친과 갓난이 때 이혼해 제 어미를 모르고 자란 열세 살 딸이 살고 있는 고향 대신 부산 한 동네 고시텔에 방을 얻어 사내는 살고 있다.

   요요 현상으로 살이 오히려 더 찌는 바람에 결국 8백만 원 들여 지방흡입술을 택한 청년은 요리사라고 자신을 밝혔다. 오성급 호텔에서 근무했지만 비상식적인 처우와 불규칙한 생활 패턴 때문에 관둔 지 좀 됐다고 했다. 8백만 원이 큰 돈이긴 하지만 앞으로를 위해 투자한 셈 치겠다고 했다. 대신 오성이든 육성이든 그 할애비가 됐든 호텔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자기가 겪어본 바로 번지르르한 겉과는 달리 중노동에 물건 취급 당하는 호텔보다는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전향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면서. 청년은 곧 서면 부근 한 타이 식당으로 출근할 예정이라고 했다. 호텔 때와 근무시간은 똑같지만 휴식 시간도 더 많고 월급도 더 많다고 했다. 지방흡입을 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요리사 출신 손님은 또 있다. 한때 서울 강남에서 잘나가던 요리사라면서 강남구 삼성동 주소가 떠억 박힌 사업자등록증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손님은 다 말아먹고 득병까지 해 부산 이 동네로 흘러 들어왔다고 했다. 갑장인데다 그 기구함이 측은했지만 위암인지 대장암인지 꽤 깊게 든 병중임에도 속이 상해 술을 마신다면서 1.6리터짜리 맥주를 패트째 나발 부는 꼴을 목격한 뒤로 스스로를 고문하는 사람하고는 상종하기 싫어서 요금 받는 깎새에 충실할 뿐이었다. 며칠 전 불쑥 들어와 머리 깎기를 청하는 손님 표정에 절절한 뭔가가 느껴졌지만 깎새는 짐짓 무심한 척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듯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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