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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14. 2024

악당이 기승떠는 세상

   받아보는 일간지를 끊을까 목하 고민중이다. 레거시 미디어만의 전유물이라 할 정보 전달 가치가 유투브 슬하에서 융성한 이른바 뉴 미디어에 압도당하는 작금에 개인적으로 무척 실망스러우면서 분노까지 치미는 바는 악당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쪽도 잘못되었지만 저쪽도 마찬가지라는 양비론을 펼치면서 한 발 슬쩍 빼 평가를 유보하거나 되려 옹호하는 기조를 보이곤 하는 것이다. 이래가지고는 매달 5만 원씩 구독료를 지불해야 할 의미가 없다. 어쩌다가 우리는 악당인 줄 뻔히 아는 가증스러운 것들에 대해 이리 관대해진 것일까.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는 당대 가장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영화 기법을 도입해 기록영화의 예술성과 창조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특히 <의지의 승리>에서 묘사한 압도적인 군중 장면 등 여러 촬영 테크닉은 서구 영화인들을 매료시켰는데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와 <반지의 제왕> 따위에서 오마주하기에 이르렀다.

   영화 천재라는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았던 인물, 하지만 히틀러의 치어리더라는 오명을 쓰고 나치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 히틀러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비난으로 논란이 많았던 인물, 종전 이후 체포되었지만 자신은 영화인일 뿐이며 나치와 정치적 관계는 없었다고 해서 전범이 되는 것은 면하고 천수(101살)를 누리며 생을 마감한 인물, 레니 리펜슈탈.

   자기 이름이 더러워지거나 말거나 존경과 명성에 천수까지 누린 악당의 일생이 너무나도 평온해 허탈할 지경이다. 착한 사람은 박명하다는 게 진정 맞는다면 차라리 비겁하고 졸렬할지언정 우선 살고 보는 게 삶을 대하는 영악한 태도라고 해도 누가 비난할 텐가. 나라를 만신창이로 조져 놓고 호의호식하는 게 정상배의 생존 전략이라면, 분탕질로 쌓은 부귀공명으로 자자손손 복을 누릴 것 같으면 법치 국가가 무슨 필요가 있고 정의 사회란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광복절을 앞뒀는데 시대착오적인 악당들이 득세하고 그 악당이 뻔뻔하게 고종명하는 정신 나간 세상에 산다는 게 너무 버거워서 넋두리를 늘어놓아봤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저/임희근 역, 돌베개, 2011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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