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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15. 2024

산소 다녀오면

   쉬는 화요일 부친과 양산 아무개 공원묘지에 모신 할머니 산소엘 갔다. 가는 길에 근방 사는 백부를 픽업해서. 산소 앞을 가리고 있는 나무의 가지라도 꼭 베어야겠다는 말을 되뇌는 부친은 톱이며 장갑을 바리바리 담은 가방을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갔다. 

   지난 금요일 갑자기 어지러움증이 일어 욕실에서 쓰러졌었다는 백부는 여덟 바늘 꿰맨 자국이 윗입술 위로 선명했고 전엔 못 보던 세 발 달린 지팡이를 짚고 일행을 기다렸다. 불과 서너 달 전과는 전혀 다른 행색에 깎새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늙은 형제 사이 우애가 그리 나쁘진 않다. 이번처럼 동행할 일이 생기면 서로 마다치 않았고 볼일 마치고 각자 돌아설 즈음 살림살이가 조금 나은 동생이 맛난 거 사드시라고 용돈을 슬쩍 찔러 주곤 하니까. 하지만 돌아서서 가는 형의 뒷모습에다 대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년이 썩 평안치 않은 형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그 지경에 이르게 한 안일함을 질타하는 걸 잊지 않는 동생. 하여 늙은 형제는 별로 닮지 않았고 불화가 상존한다. 

   무덤 앞을 가리는 나무 가지를 다 치고 났더니,

   "생전에 할머니는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당신 눈 앞을 가리는 걸 원체 싫어하셨다. 앞이 훤하니까 내 속이 다 씨언하다. 여기 온 보람이 생겼으니 오늘은 되얏다."

   모처럼 환한 미소를 짓는 부친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노친네를 진심으로 기쁘게 해 행복감으로 충만케 하는 게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다. 

   성묘를 마치고 주차해 둔 곳으로 이동하던 중 백부가 휘청거렸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어지러움증이 도진 게다. 겨우겨우 승차한 뒤,

   "우리 집안이 단명인데 내 나이 여든 둘, 네 아버지 여든이면 오래 산 편이다. 옛날 같았으면 벌써 송장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할아버지대까진 예순을 못 넘기던 집안 남자들이었지만 그 아들대에 팔순을 넘겼다면 이미 집안 내력으로는 효력 상실일 터. 그러니 살 만큼 살았다는 체념보다는 벽에 똥칠할 때까지 더 살아보겠다는 혈기가 두 노친네한테 어울릴 법하다고, 그 혈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다음 세대도 무병장수해 새로운 집안 내력으로 자리잡는 게 훨씬 건설적이지 않겠냐고 백부께 되물어보고 싶었던 깎새다. 

   할머니 산소를 다녀오면 생각이 많아지는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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