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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23. 2024

트라우마

   자른 머리카락을 도로 갖다붙이라고 으르렁대는 손님 앞에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생쥐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님 머리 스타일과 주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사달이니 옴나위없는 상황이긴 했다. 단골 미용실이 있지만 피곤한 바람에 집 가까운 커트점 들렀다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며 입엔 '씨발'이 매달려 있고 왼쪽 팔뚝엔 조악한 문신이 새겨진 우락부락한 손님한테 그 미용실에선 얼마를 지불하냐고 물었더니 1만2천 원이라고 해서 1만2천 원을 줄 테니 단골 미용실로 가서 수습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다. 하지만 염색을 해서 샴푸를 기다리는 손님, 커트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까지 점방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손님 두 명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문신 손님은 성에 차지 않은 듯 말끝마다 '씨발'을 달고 자기 머리를 어떻게 할 거냐는 소리만 되뇌일 뿐이어서 더 답답해진 깎새가 오히려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가슴 속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노여운 불두덩이가 급기야 살의로까지 변질되어 까닥하다간 수습이 불가능한 변고를 일으킬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 즈음, 불현듯 한편으로는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최강 빌런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자신이 미치도록 처량, 가련해서 깎새는 사죄하는 머리를 더 조아리다 못해 버스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부친 점방에 연통을 넣었다.

   - (부친이라고 하면 상황이 더 꼬일 성싶어 꾀를 내)스승님! 암만 해도 제 선에서는 스타일을 못 맞추겠는 손님이 계신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곤 문신 손님한테도 양해를 구했다.

   - 가까운 곳에 제가 사사했던 스승님이 계신데 제 사정을 불쌍하게 여겨 손님 머리를 대신 정리해 드리시겠답니다. 괜찮으시면 그쪽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요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부친 점방에서 일하는 김 군이 쏜살같이 차를 몰고 달려와서 문신 손님을 픽업해 갔다.

   이틀 전에 벌어진 사건이었음에도 말끝마다 '씨발'을 후렴처럼 안 달면 대화가 안 되던 문신 손님한테서 멸시와 조롱이라는 집중 포화를 당하던 장면이 뇌리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모욕적 잔상은 심신을 쪼그라트리고 말아 낯선 손님이다 싶으면 겁부터 난다. 혹시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댔는데 딱 그짝이다. 이런 걸 두고 트라우마라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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