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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26. 2024

상선약수上善若水

   며칠 전 자른 머리를 도로 갖다붙이라고 우기는 손님한테 질려 버린 기억이 악몽처럼 아직도 또렷하다. 물론 원인은 손님 요구 사항을 못 알아먹은 깎새가 제공했지만 상대 속을 굳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우길 일이었냐면 암만 복기해봐도 아니라서 복창이 더 터지는 것이다. 손님은 왜 우겼을까. 그렇게까지 목에 핏대를 세워 악다구니로 우겼어야 했을까. 도대체 우기는 게 뭘까. 


   우김질도 찬찬히 관찰해 보면 자기 주장을 우기는 방법도 각인 각색인데, 대개 다음의 대여섯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작정 큰소리 하나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방법입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반론이 묻혀버리는, 이른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우격다짐입니다.

   둘째는, 그 주장에 날카로운 신경질이 가득 담겨 있어서 자칫 싸움이 될까 봐 말상대를 꺼리기 때문에 제대로의 시비是非나 쟁점에의 접근이 기피됨으로써 일견 부전승不戰勝의 외형을 띠는 경우입니다.

   세째는, 최고급의 형용사, 푸짐한 양사量詞, 과장과 다변多辯으로 자기 주장의 거죽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방법인데, 이것은 감히 물량 시대物量時代와 상업 광고의 아류亞流라 할 만합니다.

   네째는, 누구누구가 그렇게 말했다는 둥, 무슨 책에 그렇게 씌어 있다는 둥, 자체의 조리나 논리적 귀결로써 자기 주장을 입증하려 하지 아니하고, 유명인, 특히 외국의 것에 편승, 기술 제휴(?)함으로써 '촌놈 겁주려는' 매판적 방법입니다.

   다섯째는, a₁+ a₂+ a₃+… an 등으로, 자기 주장에 +가 되는 요인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α'의 방법입니다. 결국 - 요인에 대한 + 요인의 우세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법인데, 이는 소위 헤겔의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필연성의 일종이긴 하나 필연성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자연 과학에 흔히 나타나는 기계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여섯째는, (자기의 주장을 편의상 '그것'이라고 한다면) 우선 '그것'과의 반대물反對物을 대비하고, 전체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를 밝힘으로써 그것의 객관적 의의를 규정하며,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친 시계열상時係列上의 변화 및 발전의 형태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인데 이것은 한 마디로 다른 것들과의 관계와 상호 연관 속에서 '그것'을 동태적으로 규정하는 방법입니다. 

   이들 가운데서 여섯 번째의 방법이 가장 지성적인 것임은 물론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1993, 52~53쪽)


​   우김질의 범주 중 그 첫째와 둘째 사이 어디쯤에 위치했을 최고 빌런의 우김질은 험상궂고 데퉁궂은 꼬락서니로 깎새를 더욱 난처하게 몰아세웠었다. 


​   그러나 저는 이 여섯 번째의 방법이 난삽한 논리와 경직된 개념으로 표현되지 않고 생활 주변의 일상적 사례와 서민적인 언어로 나타나는 소위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가히 최고의 형태로 치고 싶습니다.(같은 책, 53쪽)​


​   이왕에 우기려거든 좌중이 과연 우길 만하다고 수긍이 절로 드는 수작을 동원했더라면 우김질의 고수로까지 추앙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측면에서 최고 빌런은 빌런다운 악의성은 다분했지만 너무 미숙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 주고 끈기있게 기다려 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장과 주장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가 서로 만나서 친구 따라 함께 강남 가듯 춘풍 대아春風大雅한 감화感化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군자 성인지미君子成人之美, 군자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며, 상선 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순조롭기가 흡사 물과 같다는 까닭도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같은 책, 53쪽)​


​   우겨서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면 최고 빌런은 작은 성공을 일궈낸 셈이다. 그날 벌어진 사달을 계기로 올 여름 유독 손님들과 티격태격, 옥신각신 시비가 잦았던 근본적인 원인을 숙고하고 자숙하려는 깎새는 고통스런 피동의 대상이었음에도 군자 성인지미를 꿈꾸겠노라 자위한다. 

   낮은 데로 흐르는 물처럼 다투지 않으니 허물도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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