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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30. 2024

윌리엄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는 1879년 2월 19일 버밍엄 예술협회와 디자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바로 저 『로빈슨 크루소의 다음 여행』의 구절을 인용하며 주장한다.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급조된 마을 벽화나 빌딩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어리둥절한 대형 조형물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팔기 위해 허겁지겁하는 노동이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공들인 노력, 그리하여 일상의 디테일이 깃든 작은 예술과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말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의 노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윌리엄 모리스는 인간을 비천한 노동으로 내모는 무지막지한 산업화와 상업화에 저항하며,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렇지만 혁명의 구호가 울려 퍼질 광장에 세워질 거대한 이념적 조각 작품을 만들거나, 대형 운동장에서 행해질 집단 체조 디자인에 종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상을 채우는 벽지, 직물, 가구 등의 디자인과 생산에 주력했다. 일상의 물품에 깃든 아름다움이야말로,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하는 공들인 노동이야말로, 삶을 결국 구원하리라고 굳게 믿으면서.(김영민,『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159~160쪽)


   무료하다 못해 침울에 꼬르륵 가라앉아 버리면 일마다 시큰둥하고 따분해하다 급기야 허무해진다. 마음 단단히 다잡고 심기일전하려다가도 금세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삐딱선을 타 버리면 백약이 무효다. 무미건조한 형국을 반전시킬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지만 지리멸렬하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기대할 만한 건 별로 없다. 김영민이 쓴 책 제목맨키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제기한 책 제목답게 인생의 허무를 감당할 해결책도 덩달아 제시했을 성싶어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덤벼드는 허무라는 불청객을 달래볼 심산으로 그 책을 뒤지다가 윌리엄 모리스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다. 나사 풀린 정신 상태를 아주 살짝 들었다 놓았던 까닭이겠고 문구를 잘근잘근 곱씹었더니 영감靈感이란 녀석이 알랑거리며 잡힐 듯 말 듯 감질을 내서였다. '일상에 깃든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노고가 삶을 구원한다'는 의미를 안다면 그 허무라는 녀석을 잡아챌 수 있을 텐데. 아래 글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윌리엄 모리스의 가장 큰 유산은 크리에이터주의다. 그는 크리에이터주의의 선구자로서, 진정한 인간 중심 사회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에서 즐거움을 찾고, 이러한 즐거움을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모리스의 비전에서는 작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창조 커뮤니티가 중심이 됐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각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며, 자신이 원하는 커뮤니티에 자유롭게 속해 활동할 수 있다.

   모리스는 이런 생각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공예품 제작 과정에서 창의성과 장인정신을 강조했다. 그의 디자인과 제품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서 작업을 하는 사람의 영혼과 창의력을 반영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 과정에서 찾은 즐거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크리에이터주의는 현대의 크리에이터 경제와 맥을 같이 한다. 오늘날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열정을 살려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공유하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만족을 찾고 있다. 모리스가 제시한 크리에이터 중심의 사회는, 각자의 노동과 창조성을 통해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크리에이터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모리스의 크리에이터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며,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만족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이는 단순히 예술이나 디자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창조적 노동과 삶의 방식에 적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칙이다.(골목길 경제학자, <윌리엄 모리스를 위한 변론>, 브런치 에서)


   창조적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고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상이 훨씬 의미있고 만족스러워진다면 자꾸만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나. 문제는 알면서도 따라가지 못하는 정신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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