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세대에겐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의 메인 테마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에니메이션 <디지몬>의 BGM이나 영화 <밀정>, 드라마 <스카이캐슬> 삽입곡으로 귀에 익은 곡.
지극히 단순한 구조와 멜로디로도 최상의 효과를 구현한 곡. 스네어드럼의 스페인 볼레로 리듬이 배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악기를 바꿔 가면서 단 두 선율만으로 17분 가까이 이뤄지는 연주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주 선율이 도대체 몇 번 반복하는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봉을 잡았을 무렵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틀어 놓고 세어 봤다.
개별 악기(특히 관악기)가 솔로로 선율을 번차례로 연주하다가 현악기군이 개입하면서 악기들 소리가 크레센도(점점 강하게)로 차곡차곡 쌓이더니 대단원에 가서는 일거에 와르르 무너지는 붕괴미는 이제껏 접했던 그 어떤 음악에서도 쉬 느껴보지 못하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모리스 라벨 <볼레로>.
단 두 선율만으로 음악적 감동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은 단순함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구현해내는 미니멀리즘 매력과 자연스럽게 통한다. 모리스 라벨이 미니멀리즘과 연관이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로 최대 효과를 실현해낸 모리스 라벨을 미니멀리스트의 전형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은 대단하다. 소유욕에 찌든 마음을 금욕의 미덕으로 정화시키는 수련의 일환으로 <볼레로>를 듣는다면 너무 위선적일까. 마음에 얽히고 섥킨 숱한 미련의 사슬을 언제쯤이면 끊어낼 수 있을까. 너저분한 책상을 치우면서 든 잡념이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