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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ug 29. 2024

단순

   구닥다리 세대에겐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의 메인 테마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에니메이션 <디지몬>의 BGM이나 영화 <밀정>, 드라마 <스카이캐슬> 삽입곡으로 귀에 익은 곡. 

   지극히 단순한 구조와 멜로디로도 최상의 효과를 구현한 곡. 스네어드럼의 스페인 볼레로 리듬이 배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악기를 바꿔 가면서 단 두 선율만으로 17분 가까이 이뤄지는 연주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주 선율이 도대체 몇 번 반복하는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봉을 잡았을 무렵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동영상을 틀어 놓고 세어 봤다. 


1선율 - 1선율 - 2선율 - 2선율 - 1선율 - 1선율 - 2선율 - 2선율 - 1선율 - 1선율 - 2선율 - 2선율 - 1선율 - 1선율 - 2선율 - 2선율 - 1선율 - 2선율


   개별 악기(특히 관악기)가 솔로로 선율을 번차례로 연주하다가 현악기군이 개입하면서 악기들 소리가 크레센도(점점 강하게)로 차곡차곡 쌓이더니 대단원에 가서는 일거에 와르르 무너지는 붕괴미는 이제껏 접했던 그 어떤 음악에서도 쉬 느껴보지 못하는 카타르시스 그 자체다. 

   모리스 라벨 <볼레로>. 

   단 두 선율만으로 음악적 감동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은 단순함으로부터 아름다움을 구현해내는 미니멀리즘 매력과 자연스럽게 통한다. 모리스 라벨이 미니멀리즘과 연관이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로 최대 효과를 실현해낸 모리스 라벨을 미니멀리스트의 전형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은 대단하다. 소유욕에 찌든 마음을 금욕의 미덕으로 정화시키는 수련의 일환으로 <볼레로>를 듣는다면 너무 위선적일까. 마음에 얽히고 섥킨 숱한 미련의 사슬을 언제쯤이면 끊어낼 수 있을까. 너저분한 책상을 치우면서 든 잡념이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법정)


https://www.youtube.com/watch?v=E9PiL5icw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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