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여태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완이 사는 동네인 부산 초량으로 일이 년에 한 번(그러니까 아주 가끔) 찾아가 술잔을 나누긴 하는데 만날 적마다 녀석이 친근하면서도 낯선 이율배반은 어인 연유일까.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친밀하게 구는 건 변함이 없지만, 결코 의도적이지 않다고 녀석이 항변한다고 해도, 녀석과 나 사이엔 표가 안 나는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선 같은 게 놓인 듯하다. 그걸 거리두기라고 한다면 어째 삼십 년 우정이 무색해지지만 지구 주위로 달이 돌 듯 적당한 궤도를 유지함으로써 변함없는 유대가 지속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아주 없진 않다. 아무튼 문경지교 같은 돈독함하고는 썩 어울리지 않는 녀석과 나의 관계가 무탈하게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순전히 녀석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화술에 기댄 바 크다. 부담없이 툭툭 내뱉는 녀석의 뼈 있는 헛소리가 그간의 격조를 일순 말끔히 씻어 버리기 때문이다.
감칠맛 나게 말하는 부산 머스마 둘을 오랫동안 친구로 알고 지내는 행운을 누린다. 둘 중 하나는 내가 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용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계속 입방아에 오르는 완이다. 그 둘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문과 출신에 환이와는 2학년 땐 같은 반), 대학교를 나온 동문이다. 게다가 용이와 완이는 법학과 동기이기도 하다. 매스컴에서 구변 좋은 인간들은 대체로 율사 출신이고 보면 그 둘의 입담은 법학과에 들어가서 꽃을 피운 것일까 법학과에 들어갈 운명을 타고난 천성이었을까. 그런 입담도 사람마다 특징이 제각각인 바 그 둘 역시 청산유수처럼 막힘이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어떻게'를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용이는 화제를 접근함에 있어 정당의 대변인을 닮았다. 대단히 풍자적이면서 해학적이다. 논리정연하기까지 해 귀에 쏙쏙 박히지만 발화 시 다소 전투적이어서 경우에 따라 청자가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에 비해 완은 능청을 떨거나 허허실실로 아무 말 대잔치를 쏟아내는 듯하지만 실상 놀랄 정도로 예민하고 정확한 직관을 지녔다. 좀 거친 구석이 있지만 단순하고 명쾌하게 요약하되 녀석의 말은 곱씹을수록 맛이 제대로다. 나는 그런 녀석의 재주를 통찰력이라 부르고 싶다. 그런데, 그런 완이의 어록을 여기에다 주욱 나열하면 좋으련만, 기록하지 못하면 망각하고 마는 내 부실한 기억력 탓에 머릿 속에 남은 게 하나도 없다. 완이를 소재로 글을 쓰겠다고 작정한 그제 저녁부터 기억의 파편을 찾아 헤맸지만 녀석의 목소리만 귓전에서 윙윙거릴 뿐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 송구하다. 안타깝지만 앰브로스 비어스가 「악마의 사전」에서 기발하게 펼친 위트와 유머로 갈음하겠다. 내 생각에 완이의 입담과 유사한 구석이 많아 꿩 대신 닭으로다가 대신하는 것이니 이를 통해 완이란 사람의 화법을 미루어 상상해 보시라.
• 우정friedship- 날씨 좋을 때는 두 사람이 충분히 탈 수 있으나 날씨가 나쁠 때는 오직 한 사람밖에 탈 수 없는 배ship
• 플라토닉platonic- 성불능인 남자와 불감증인 여자 사이의 애정에 대해 바보가 붙인 이름
• 치과의사dentist- 환자의 입에다 쇠를 집어넣은 후 환자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빼내보이는 요술쟁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용이와 완이 그리고 나, 셋이서 한 자리에 만날 날이 과연 오긴 올까마는 만약 세기의 만찬을 함께하는 날, 나는 그 둘이 벌일 말들의 향연을 토씨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쟁여 둘 테다. 하여 향후 내가 쓸 문장에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로 요긴하게 삼겠다. 그럴 만한 가치가 분명 있다. 요원한 만남을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으니 가차운 데 사는 완이나 한 잔 마시자고 우선 꼬셔봐야겠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녹음 기능도 시험할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