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강국 일본에서도 인쇄 잡지 감소세가 두드러진단다. 그런 불황을 뚫고 여성 시니어 잡지 ‘하루메쿠(はるめく, 봄기운이 퍼지다)’는 46만 유료 정기구독자 보유, 연 매출액 2,800억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레드오션이 분명한 잡지업계에서 하루메쿠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닭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하는 경향신문 <일본 여성 시니어 잡지 '하루메쿠'...어떻게 46만 명 유료 구독자를 모았나>(2024.09.06) 기사에서 옮김)
1) 요즘 시니어, 젊다···표지부터 '봄'으로
타깃 독자를 60대 이상 여성에서 50대 여성으로 낮추고 여성지 느낌으로 세련미를 더했다. 하루메쿠는 여성들이 언제나 신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잡지 제호와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 시니어는 계절로 따지면 가을이나 겨울로 대변되지만 하루메쿠 표지와 지면은 매월 봄처럼 화사한 일러스트로 꾸며진다.
2) 젊게 살기? 나이 '잘' 들기
하루메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시니어 잡지'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열 살 젊어진 '디톡스'에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 요시자키 에이지는 하루메쿠 성공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다. "하루메쿠는 독자를 시니어로 규정짓지 않는다. 인구학 통계에서는 65세 이상을 시니어로 정의하지만, 오늘날 65세는 너무나 젊고 여전히 현역이다. 게이오백화점 신주쿠점의 매출 70%는 50세 이상 고객에게서 나온다. 고령자를 위한 제품에 '시니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너는 늙었다'고 선을 긋는 것과 같다. 하루메쿠는 겉모습은 화사한 여성지면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알찬 콘텐츠를 담아내 충성 독자를 일궈냈다."
3) '백발, 자연스런 그레이 염색'···이런 게 궁금했어
하루메쿠에는 미디어 매체 관련자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외부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메쿠는 매체를 통한 ‘미디어 커머스’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잡지 지면으로 소개되는 각종 생활용품은 모기업인 하루메쿠홀딩스가 개발한 제품이다. 의류, 신발부터 헤어 염색약까지 망라한다. 통신 판매는 물론, 자사 제품만 판매하는 오프라인 편집숍 ‘하루메쿠’도 전국 14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메쿠 윤기나는 그레이 컬러’ 염색약(사진)은 ‘백발을 염색하지 않는 법’ 특집 기사로부터 파생된 상품이다. 흰머리가 올라올 때마다 꾸준히 흑발로 ‘뿌(리)염(색)’하다가 머리카락이 상해 염색을 중단하면 머리가 얼룩덜룩해지는 중년 여성의 고민을 다루면서 회색(그레이 컬러)으로 물들여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러운 헤어 연출법을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마땅한 회색 염색약이 없어 하루메쿠가 직접 개발에 나섰고 출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루메쿠의 승부수는 남다른 콘텐츠와 독자 니즈를 구현한 자사 상품 판매에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잡지 판매 부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록’ 없이도 잘 나가는 이유다. 하루메쿠가 인기 잡지가 되면서 외부업체 광고면으로 배정한 지면도 매월 100% 채워지며 매출에 일조하고 있다.
4) 당신의 마음을 보내주세요
하루메쿠 편집부에 잡지 제작에 있어 여느 잡지와 다른 가장 큰 차별점을 꼽아달라고 하니 “철저히 독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의 여성잡지는 보통 3개월 전부터 취재 아이템을 잡는다. 하루메쿠는 최소 6개월 전부터 메인 기획 기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편집부 외에 사내 싱크탱크인 ‘생기 있는 삶 연구소’가 있어요. 독자 설문조사나 좌담회를 실시해 독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를 발굴합니다. 메인 기획 기사인 특집은 막연한 상상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나이대 여성의 고민에 관해 ‘밝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매월 편집부에 도착하는 약 2000장의 독자 엽서는 잡지의 목차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편집부는 ‘잡지에 대한 의견을 써주세요’가 아닌, ‘하루메쿠에 짧은 편지를 써주세요’라고 요청한다. 그 덕분에 ‘정원에 꽃이 피었다’든지 ‘손자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같은 독자의 일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편집부 기자들은 이를 통해 ‘독자 페르소나’를 그려낸다.
야마오카 아사코 편집장은 “독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태도가 하루메쿠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편집부는 광범위한 온라인 설문 조사와 소수의 독자와의 그룹 인터뷰를 포함해 다양한 연구를 한다”며 “웹 시대에 역행하는 속도지만 종이 잡지 특유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5) 독자가 지면의 주인공
하루메쿠의 친독자 정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사 제품을 직접 체험하는 모델도 독자를 적극 활용한다. 잡지 제작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얻은 독자의 충성도는 굳건해지게 마련이다.
일본 잡지업계를 평정한 하루메쿠가 중년 여성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장수나 동안이 아닌,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삶’이다.
1995년 3월, 초급 장교 임관과 동시에 3개월 군사 교육을 받으러 입소한 곳은 전남 장성 상무대. 사단이 같은 인원들끼리 숙식을 함께 하면서 소대장 교육을 받았다. 한 방에 정원은 네 명이었다.
깎새를 포함해 부산 출신 둘, 전북 출신 하나, 서울내기 하나가 한 방에서 동고동락했는데 그 중 서울내기는 애리애리하고 뽀얀 살결에 아직 소년 티를 못 벗은 게 군대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샌님같아 보였지만 네 명 중 학벌은 최고로 치는 연세대 경영학 전공자였다. 서울내기에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니 제 앞가림만 중히 여기는 얄미운 서울 깍쟁이의 전형이겠거니 멀리하려 했었으나 좀 지나고 보니 기특한 구석이 많은 재주꾼이었다.
어차피 힘든 군생활은 똑같을 동기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학벌의 우열로 친소를 정하는 동기들이 없지 않았다. 특히 SKY 출신들이 고약한 티를 내곤 했더랬다. 헌데 그 녀석은 동기라면 가리지 않고 똑같이 살갑게 대했고 능글맞게 굴었다. 어울리는 데 전혀 부담이 없으니 상대방도 녀석을 마치 오래 사귄 친구인 양 허물없이 대했다. 그렇게 동기들 사이를 유영하다 혹시 재미나고 특별한 뭔가가 눈에 띄었다 싶음 호기심이 일어 악착같이 묻고 열나게 메모를 해뒀다. 더 나아가 부대 주변에 기발한 화젯거리가 없나 하고 틈틈이 물색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책상에 앉아 하라는 군사학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A4 용지에다 뭔가를 열심히 끼적이거나 삽화를 그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공을 들이고 나면 녀석은 부대 공지사항을 걸어두는 알림판에다 떠억하니 전시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공개를 했다. 별 거 아닌 내용인데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낼 줄 알는 재주는 신통했다. 장교 임관 전에 결혼부터 한 아무개 동기 부인이 임신을 했는데 그 사유로 신랑이 휴가를 낼 수 있냐고 아내가 문의를 했다는 둥, 아무개 훈육장교가 상무대 내 아무개 여군과 얼레리꼴레리 사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따위 민완 기자 뺨을 치고도 남을 재빠른 정보력이 우선 놀라웠다. 거기에 더해 기사를 읽고 나면 피식 헛웃음부터 새어 나오지만 반복되는 훈련의 고단함까지 덩달아 해소되는 엉뚱발랄한 이야기는 어느새 모두에게 청량제와 같은 역할로 충분했다.
고압적이고 엄숙해야 할 부대가 날리는 분위기로 전락할 것을 우려한 훈육장교들이 불호령을 내릴 거라는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전례가 없어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으나 부대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공유함으로써 전우애가 더 끈끈해지는 효과를 기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건 물론이거니와 기사 내용이 유쾌하기 짝이 없어 그 덕분에 강도가 여간 아닌 훈련에 정신적 이완 작용을 도모할 휴게 코너로 유용하다는 긍정적인 판단을 내린 때문인지 훈육대장은 묵인해줬다. 그 판단은 그대로 적중해 그 건물에 숙식했던 동기들은 한결 부드럽고 유순하게 3개월 훈련에 임했던 게 사실이다.
상무대를 퇴소하는 6월 말까지 녀석의 잡지 발행은 이어졌다. 같은 방을 쓴 덕분에 깎새는 녀석이 하는 작업을 거드는 행운을 누렸다. 깎새가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녀석은 다 쓴 원고의 교정을 맡겼으니까. 인터넷이 생소했던 1995년 3~6월 무렵 A4 용지 대여섯 장을 포갠 약식 잡지의 위력은 대단했다.
타깃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능력을 갖춘 잡지라면 설령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시장의 변화를 겪는다 해도 하루메쿠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무엇일지는 잡지를 만드는 이들이 풀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과제겠지만 너무 어렵게 여길 것도 아닌 성싶다. 1995년 서울내기 동기가 A4 용지 대여섯 장 분량의 약식 잡지를 왜 만들려고 했는지를 그 당시 녀석 마음에 들어가 생각해 보면 대강 드러나지 않을까. 하루메쿠 성공의 다섯 가지 요인 중 4)당신의 마음을 보내주세요와 5)독자가 지면의 주인공 대목과 얼추 겹쳐지는 것도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