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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Sep 21. 2024

그 맛이 아닌 걸 어쩌랴

   자식들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모친은 음식 장사를 했다. 마누라 노는 꼴을 못 보는 부친 성화 때문인지 남편을 도와 가정 경제 부흥에 일조하려는 자발적 의지인지는 두 노친네가 서로 짠 듯이 두고두고 함구하는 바람에 알 길이 없으나 아무려면 어떠랴, 1980년대 남들은 큰맘 먹고 사 먹었을 먹거리를 스스럼없이 삼시 세끼로 먹는 호사를 누리긴 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모친의 손위언니, 그러니까 작은 이모한테서 그 기술을 전수받아 돼지갈비구이점을 연 걸 필두로 중화요리, 아구찜을 거쳐 최종적으로 분식점에 이르는 장사 이력은 근 20년 동안 이어졌다. 손이 크고 씀씀이가 덜퍽스러웠던 모친이 남발한 외상 때문인지 이문이 별로 남지 않아 가정 불화가 끊이질 않았을갑세 중진국 고지가 코앞이라며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해도 여전히 배 곪는 이들이 허다했던 시절 돼지갈비, 자장면, 우동, 짬뽕, 밀면, 아구찜, 떡볶이, 오뎅, 튀김에 이르는 먹거리 호강은 그 집 맏아들로 태어난 보람이기에 가능했을 테다.  

   그때 그 음식 맛에 인이 박여서인지 엔간히 안 비슷하면 맛나다는 표현이 쉽게 터지질 않는다. 오죽하면 마누라가 작위적일망정 그냥 맛있다고 말하면 될 일을 "먹을 만하네"란 어정쩡한 품평으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 갈피를 못 잡아 애써 장만한 사람 기운빠지게 만드는 심술이 탁월하다고 역정을 낼까. 하지만 그건 마누라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도대체 입맛에 착 달라붙질 않는데 아닌 걸 기다 라고 날조할 순 없지 않은가. 제 아무리 매혹적인 양념으로 재워서 구워낸들 1980년대 모친이 구웠던 돼지갈비 맛이 아닌걸 어쩌란 말인가. 돼먹잖게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내놓는 떡볶이라 한들 어릴 적 엄마가 분식점하면서 팔던 떡볶이 맛 근처에도 못 미치는 걸 어쩌란 말이냐고. 이미 굳어져 버린 자기만의 미식 기준을 배반하면서까지 엄지 척!하는 시늉을 낼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는 게 치명적이라서. 그러고 보면 말이 쉬워 소울푸드지 영혼을 위로해 줄 그때 그 맛이 그대로인 음식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차라리 그때 그 음식을 갈구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 풍진 세상을 견디는 정신 승리용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낫지 싶다.

   덧붙여 말하는데 '영혼을 울리는 소울푸드'란 없다. Merriam Webster 사전에는 'soul food'를 <(such as chitterlings, ham hocks, and collard greens) traditionally eaten by southern Black Americans>, "치터링스(돼지고기 소장 요리), 햄 혹스 그리고 컬러드 그린스 등과 같은 미국 남부 흑인들이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뜻으로 설명했다. 결국, soul food는 미국 남부 흑인들이 먹는 '특정한 음식'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소울푸드'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울푸드'라는 뜻이라면 comfort food 정도가 어울리는 영어 표현이다. '소울푸드'도 일본어 ソウルフード(소울푸드)에서 온 일본식 영어다. 일본에서 이 말은 "일본에서는 밥과 미소 된장국이 소울푸드다"라든지 "타코야키는 오사카의 소울푸드다"처럼 쓰인다.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나 "각 지방의 특색 음식"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와 완전히 동일하다.(오마이뉴스, 2021.12.14. 기사에서 인용)

   모친 손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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