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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Sep 28. 2024

바다와 5분만 섹스하다

   10월 중순께 고등학교 동창 둘과 일본 여행이 잡혀 있는 마누라와 퇴근하던 찻간에서 나눈 대화다.

   명절 앞이면 모처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는 남편 친구들 이름을 마누라가 들먹이면서,

   "남자들끼리 여행 가면 어떤 느낌일까?"

   길게 나눌 대화가 아니다 싶어 원천봉쇄하는 깎새.

   "댔다 마. 구찮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말꼬리를 놓지 않는 마누라.

   "나이 들면 친구들이랑 여행 가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구찮다는데도. 혼자 갈끼다 여행."

   "혼자라도 가겠다니 다행이네. 어디로 갈 건데?"

   바다, 바다로 갈 거다. 

   집이 청사포에서 가까운 덕을 톡톡히 볼 때가 언제인고 하면 인적 뜸한 거기 방파제에서 새벽 바다를 바라보는 호사를 누릴 때다. 가히 진경이다. 관광지라 어김없을 한낮의 번잡함을 포기하고 새벽을 빌어 극단적인 순결주의를 택한 건 단 5분간만이라도 어떠한 거리낌 없이 그녀와 교접하고 싶어서이다. 경험한 중에 가장 흥분되는 오르가슴을 위하여. 

   5분도 사실 길다. 그녀를 아우르자니 달리는 정력이 우선 어쩔 수 없겠으나, 그보다 한창훈 소설가를 끌어와 변명 아닌 변명을 둘러댈 수밖에 없겠다. 

   

   집안에 낚시꾼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귀띔 하나 해드리겠다. 낚시꾼들은 바다를 좋아해서 맨날 출조出釣한다고 하지만,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하지만 믿지 마시라. 실제 바다는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저 푸르고 거대한 한일자一를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이 부분이 산山과 다르다). 한번 해보시라. 얼마나 오랫동안 보고 있을 수 있는지. 하루 종일 갯바위에 서 있는 낚시꾼들이 바라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초릿대(낚시대 맨 끝부분)거나 노란 찌다. 그들에게서 채비를 빼앗아버리면 지겨워서 30분도 못 견딘다. (한창훈,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한겨레출판, 2016,  112~113쪽)

   

   그러고 보니 한창훈이 쓴 책을 다시 손에 쥐고 있다. 바다가 그리우면 그가 쓴 책들을 뒤적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번에는 그가 그린 바다를 돋보기로 보듯 세심하게 들여다볼 작정이다. 바다 기둥서방이 될 자격을 갖추려면 한창훈을 숙독, 아니 아주 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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