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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

by 김대일

깎새가 전철로 한창 출퇴근하던 때 일이다.

2호선 전철 꼭 4-3칸 가장자리에만 앉으려고 했다. 이유불문 그냥 습관이었다. 도착역에 내려 한시라도 빨리 점방으로 향하자면 에스컬레이터가 더 가까운 뒤칸으로 탈수록 효율적이지만 어정쩡한 중간 칸에 타야 괜스레 편했다. 중간 칸은 출퇴근 시간엔 상대적으로 승객이 덜 몰려서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런 것만도 아니니 이유라고 볼 순 없었다.

그러다 출근 전철 간에서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자꾸 의식하는 자신을 발견한 깎새. 신경이 곤두서는 즈음은 도착역 바로 전 역에 전철이 정차하면서부터다. 전철 문이 열리면 중늙은이 남자가 그 칸으로 입장한다. 깎새처럼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써서 용모파기가 용이치 않았지만 땅딸막한 체격에 작취미성昨醉未醒인 양 늘 불그뎅뎅한 안색, 찢어져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중후한 로맨스그레이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었지만 눈치빠른 처신에는 도통했을 인상은 강했다.

아니나다를까 승차하자마자 누굴 찾는지 두리번거리곤 했는데 그 대상이 다름아닌 깎새였다. 깎새가 다음 역에서 반드시 하차한다는 사실을 같은 칸에 탄 승객 중에 유일하게 알아챈 약빠리. 남이 알지 못하는 고급정보를 손에 쥔 사람은 선제적이라 유리하다. 출근길 깎새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4-3 칸 가장자리로 걸어와 깎새 무릎과 닿을락말락 바싹 다가서서는 창공을 유유히 날다 창졸간에 낙하해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금류마냥 깎새가 일어서는 기척이 나자마자 그 즉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버리기 일쑤였다. 때때로 다른 데 빈 자리가 나 일단 앉았다가도 깎새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후다닥 깎새 자리로 달려들었다. 맡아놓은 게 아닌 데다 공공재이다 보니 내 것 네 것 따질 계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약삭빠름이 눈에 거슬려 괜히 얄미웠다. 붐비는 아침 출근길 누군 앉고 싶어도 난 자리를 못 잡아 서서 가는 판에 누군 횡재를 숫제 손에 쥐고 흔드는 꼴이라 아니꼬웠던 게지.

이것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닐 수 없다고 분개한 깎새는 기울어진 걸 기어코 평평하게 다져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최애하던 4-3칸을 포기하고 다음 칸인 5-3으로 옮기는 이변을 연출한 것. 뒤칸으로 갈수록 승객들이 몰려 혼잡스럽긴 했다. 하지만 늘 그 자리에 앉았을 깎새가 보이지 않아 당황해할 면상을 상상하면 쌤통도 그런 쌤통이 없었던 게다.

알겠지? 깎새가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한 녀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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