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했다.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한 잔이 간절한데 글로 대신한다.
- 전화 받아. 선배라는구나.
1991년 1월 중순. 엄마가 수화기를 건네 줬다. 자신을 동문 선배라고 밝힌 이는 부산대학교 정문 앞에 모일 모시까지 나오라고 했다. 조곤조곤한 말투였지만 이유를 따져 물을 수가 없이 위압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2학년 선배란 작자들한테 둘러싸여 린치를 당한 적이 있었다. 뻣뻣해서 기분 나쁘다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였는데 그 경험이 선배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로 늘 잠복해 있어서 영 입이 안 떨어진 걸 수도 있었다.
집을 나설 때까진 내키지 않았지만 입학할 학교 정문 앞에 다다르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살랑이는 봄바람 불 때쯤 저 캠퍼스를 활보하고 있겠지. 내 청춘은 이제부터다!
뒤에서 이름을 불렀다. 기계라는 소리밖엔 알아듣질 못할 무슨무슨 기계학과 90학번이라고 자기들을 밝힌 선배 둘은 어디론가 나를 데리고 갔다. 입학 전 개별 OT니 긴장하지 말라고 나긋나긋하게 말했지만 그 수작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학교 정문을 나와 바로 왼편에 <중국관>이란 간판이 걸린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2층으로 난 계단을 올라 가니 칸막이로 공간을 나눈 쪽방들이 줄 서 있었다. 그 중 한 문을 여니 세 사람이 제사상만 한 다리 네 개짜리 접이식 상 양쪽에 앉아 마주보고 앉았는데 흡사 취조실 풍경을 닮았다. 벽에 불량스레 기댄 채 담배를 꼬나문 한 사람은 취조를 하는 형사로, 맞은편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직수굿하게 앉아 있는 둘은 현장에서 체포된 공범인 양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를 끌고 온(?) 둘은 형사 쪽으로, 나는 공범 둘 쪽으로 갈라 앉았다. 바야흐로 세 번째 공범으로 나는 합류했다.
중국집에 왔으면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을 기대감이 설핏 들었지만 차임벨을 누르자 올라온 가게 점원한테 건 주문을 듣자 체념했다. 짬뽕이면 짬뽕이지 짬뽕국물은 무슨 심보인지, 그것도 두 그릇만. 사람이 몇 명인데. 더 가관은 소주는 사람 수대로 시킨다. 주문을 확인한 점원이 막 나가려는데 형사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세 명의 공범을 가리키면서 사족을 단다. 또 부르기 뭣하니까 음식 올 때 사발도 머리 수대로 가져 오라고. 알아서 챙길 텐데 새삼스럽다는 듯 점원 야비한 썩소 쓱 한 번 짓고 사라졌다.
- 우리는 부산대학교 금성고등학교 동문 동아리 중 하나인 <솔트>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숭고한 뜻을 품은.
당시 결성 12년째인 <솔트>는 금성고를 졸업한 1991년 부산대학교 신입생들 중에 물색해 90학번(솔트 12기)들이 돌아가면서 입학 전에 두서넛을 불러내 사전 신고식을 했는데 그날은 내 차례였다.
음식이 차려졌다. 짬뽕국물, 양파와 단무지, 춘장, 일단 소주 여섯 병, 탕수육(기억에는 없는데 하도 불쌍하게 굴어 추가로 주문했는지 모를 일이다)
공범 중에 한 녀석이 손을 들었다.
- 왜?
- 짜장면 시켜 주시면 안될까요?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
- 그렇지? 짜장면 먹고 싶지? 이 방에만 들어오면 유독 배고파. 그치?
- 너도 그랬냐? 나도 그랬는데. 희한하네.
- 시켜줄께. 근데….
살짝 뜸을 들이더니 이내 크리스마스 녹색괴물 그린치처럼 입꼬리가 올라간다.
- 통과의례라는 건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지금이야말로 너희들이 <솔트> 일원이 될 자격을 갖췄는지 테스트 받을 시간이다 이 말씀이지.
공범 셋 앞에 냉면 사발이 놓여져 있었다. 소주를 부으면 넘치치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두 병 분량이다.
- 딱 작년 이맘때였지 아마. 우리도 너희들처럼 선배님들이 내리신 하사주를 넙죽 받아 마셨음에도 하해와 같은 선배님들의 후배 사랑을 한 사발로 도저히 느껴지지 않아서 자청해 한 사발 더 털어 넣은 뒤에야 짜장면 곱배기로 입가심을 했단다. 얘들아, 파이팅!
못 마실 정도까진 아니었다. 후딱 들이붓고 매콤한 짬뽕국물을 그릇째 들이켜니 요동치던 속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공범 하나가 분수를 뿜었다. 예상했다는 듯이 형사 하나가 미리 준비한 대야를 녀석 앞으로 들이밀었다.
- 우리 <솔트>는 금성고등학교와 데레사여고 연합 동문 동아리로 12년 전통을 자랑한다. 새롭게 13기 후배들을 받게 되어 가슴이 설렌다. 오늘 이 자리는 정식 신입생 환영식을 앞두고 일종의 예비모임으로 여겨주면 고맙겠고 앞으로 일정은….
형사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면서 상석으로 모신 경찰서장 같은 이가 언제 들어왔는지 자리를 잡고 일장연설을 해댄다. 비몽사몽 간에 하나도 안 들렸지만 '여고'라는 단어만은 귀에 쏙 박혔다. 여고면 여자고등학교고 연합이라면 같이 논다는 소리니 이 아니 기쁠소냐. 하지만 노는 건 노는 거고 오늘 집엔 어떻게 들어간다? 그리고 몸은 왜 자꾸 둥실둥실 떠다닐까? 사람이 날 수도 있나? 날아간다. 날아간다.
인생 최초의 폭음은 솔트와 함께였다. 무사히 그날을 넘겨서인지 허랑방탕 음주일색의 시동이 제대로 켜졌다. 그렇다고 후회는 없다. 교문으로부터 직선거리 10m 내였던 중국관이 학교의 부속건물이나 진배없었다면 내 청춘의 개화가 캠퍼스가 아니었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까.
준기 형, 도형 형, 원욱 형, 창수 형, 정기 형, 정태 형…. 솔트 12기 형들하고 막걸리 한 잔 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