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장갑 해프닝

by 김대일

말 나온 김에 옛날 이야기 하나 더 하자. 오늘의 주인공은 일전에 등장했던 완(전에 올린 글을 본 용이 댓글로 '환'이 아니라고 짚어줘 후다닥 고쳤다)이고 조연은 가죽장갑이다.

1991년 1월 개별적인 냉면 사발 신고식이 끝나고 얼마 뒤 솔트 신입생(13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합을 다진다. 그런 화합이 하루 걸러 한 번씩 주점을 돌며 열리다 보니 없는 정까지 생길 지경이었고 13기 동기들끼리 MT를 가자고 누군가가 제안을 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겨울바다(구체적으로 울산 진하 해수욕장) 보러 1박2일. 당시 한눈에 반한 여자 동기가 MT 참석을 예고하자 어떡하든지 꽁무니를 따라다녀야 했던 나는 애간장이 탔다. 일단 MT 무리에 껴야 뭐든 다음을 도모할 텐데 대학 합격자 발표 직후부터 대학생 대접이라면서 음주, 흡연 따위에는 관대했지만 유독 외박만은 결단코 용인하지 않는 아버지가 큰 난관이었다. 집 놔두고 한데에서 무슨 개고생이냐고 하셨지만 삐삐도 귀했던 시절 젊은 혈기만 믿고 나대는 꼴이 불안해 내린 극약 처방이셨을 게다. 아무튼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진하 바닷물 속을 첨벙거리고 있었지만 정 가고 싶거들랑 당신들을 밟고 가라는 부모님의 극력 저지에 MT 출발 이틀 전까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나는 막걸리를 퍼마시면서 완이한테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단 질러놓고 보는 완이의 기질 상 뭐가 걱정이냐, 당장 집으로 같이 가서 아버님을 자기가 설득해 이틀 뒤 희(마음 빼앗긴 동기)와 나란히 손 잡고 진하 행 동해남부선이 출발하는 부산진역 플랫폼을 걷게 해주겠다는 무대포의 진수랄밖에 없는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데 녀석 말대로 이뤄지든 말든 그 말이 어찌 그리도 고마운지 이 세상에 진정한 친구는 완이 자네밖에 없다며 호주머니 돈 다 털어서 그날 술판에다 뿌렸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자는 것까지는 의기투합을 했는데 정작 방울 달 녀석이 그만 술에 전 탓에 아버지와의 담판은커녕 둘 다 우리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져 버렸다. 친구까지 데려온 꿍꿍이를 직감하셨는지 아버지는 아침 일찍 어디 나가 자취를 감추셨고 나는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어머니 차려주신 해장국에 밥까지 시원하게 말아드신 완이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시작도 안 했지만) 쩝쩝 입맛만 다시더니,

- 희 주변에 얼쩡거리는 녀석들이 없도록 철통 경계를 서겠네 친구.

하더니 전날부터 호시탐탐하던 내 가죽장갑을 어루만지면서,

- 이왕 보디가드할 거면 가죽장갑 정도는 껴줘야 때깔도 나고 하는데 쩝.

숯검댕이보다 시커먼 완이의 두 눈썹이 아래위로 요동치는 순간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수 있겠단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권투 글로브를 끼듯 내가 사모하는 여자를 하나같이 카사노바로 보이는 남자 동기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데 그깟 값이 꽤 나가는, 아껴 쓴다고 나도 한두 번밖에는 안 껴본 가죽장갑이 무슨 대수겠는가. 출정하는 장수에게 부월을 맡기듯 장갑을 완에게 건네며,

- 그녀를 꼭 지켜 다오. 임무가 끝나면 장갑은 꼭 반납하고.

어쨌든 완이는 임무를 완수했다. 애초에 희한테 껄떡대는 녀석들이 없었을뿐더러 가죽장갑 끼고 하도 극성맞게 군 완 때문에라도 희 주변에는 얼씬도 안 했다는 후문이니까. 그 덕분인지 나는 희와 두 해 남짓 연애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럼 장갑은? 완이가 꿀꺽했다. 가져간 놈이 자발적으로 토해 내지 않는 한 돌려 달라기가 어째 민망했고 결정적으로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장갑 한짝의 행방을 완이도 몰라 울며 겨자먹기로 장갑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선물 받고 몇 번 껴보지도 못한 신상이 아깝지 않을 리 없었겠지만 그 여자와 두 해씩이나 진하게 연애하게 해준 대가치곤 약소하다.

사족- 오륙 년 전이었지 아마. 어쩌다 용이랑 드라이브를 가다 진하 근처를 지날 즈음이었다. MT가 생각난다며 녀석이 운전대를 꺾었다. 일행이 내렸다는 동해남부선 남창역, 그들이 묵었다는 마당 넓은 민박집, 풋풋한 대학 새내기들의 낭만을 한껏 발산했던 진하 해수욕장까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MT 일원이었던 용이 연신 침을 튀겨 가매 옛추억을 곱씹는 것도 모자라 사진을 팍팍 박아서리 단톡방에 올렸고 추억을 소환당한 일단의 동기 무리들이 카톡에 불이 나도록 댓글을 달아댔다. 묘하게 소외감을 느끼는 나. 그때 갔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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