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타이틀이 「청년의 소리」이니 필자가 청년임에 분명하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란 제하로 작가라고 밝힌 청년 필자는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일상이 반복되면 관성이 생기고 그게 오래되면 습관으로 변해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들 테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를 자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자기의 일상을 통해 자기가 염원하는 잘 사는 방식을 슬쩍 내보인다. 즉 경제적인 여유는 없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빈도를 줄여 그 에너지를 하고 싶은 일에 쏟아 붓기로 작정하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긍정적으로 자기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왔다고 필자는 역설한다.
칼럼 쓰고, 글쓰기 강의하고, 출간할 책 기획하며 저자와 미팅하고,연극 무대에도 선다는 필자를 오래된 지인은 '철저히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평했단다. 필자는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다 자칫 표면적으로 흐를 소확행이라는 말에 의미를 덧붙인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가령 혼자서 일하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클라이언트나 협업자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사소통하고 피드백을 나눠야 한다. 콜 포비아(Call phobia)를 느끼는 필자로서는 피하고 싶지만 참아낸다고 한다. 강의하는 걸 좋아하지만 말하는 게 근본적으로 서툰지라 실수를 덜 하려고 몇 배로 강의 준비를 한단다. 준비하는 시간은 고역이지만 그것이 필자에게 가져다주는 경험의 질에는 환호한다는 식으로.
젊은 인플루언서가 말하는 잘 살고 싶은 마음에는 기성세대인 나에게는 없는 낭만이 서려 있어서 솔직히 부럽다. 감탄고토로 세상을 가늠하는 단순한 흑백논리에 찌든 사람으로서는 콜 포비아, 몇 배는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할 고역 같은 강의 준비 등 내가 싫은 일마저도 소확행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받아들이려는 여유로운 정서가 생경하면서도 재차 말하지만 무척 부럽다. 하지만,
작은 점방 차려서 소소하나마 끊김없는 수입을 벌어볼 요량으로 시작한 이발 기술이지만 자격 시험을 네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미련을 못 버려 또 학원을 기웃거리면서 생돈을 퍼붓는 게 내 이발기술을 보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질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본 적, 단언컨대 없다. 견습하러 간 커트점에서 머릴 왜 그 따위로 깎았냐거나 약을 발랐는데도 염색이 왜 흐릿하냐는 진상 손님의 지랄을 앞으로 내 가게를 운영하기에 앞서 미리 치뤄야 할 시행착오라고 큰 그림 그려본 적도, 역시 없다. 그저 부침없이 무사히 일상나기를 바라는 게 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그러니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싫은 것도 좋은 것으로 순화시키려는 필자의 발상은 딴 나라 얘기같기는 하다. 비비디 바비디 부,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이야 아름답겠지만 칼럼을 읽고 난 나는 속이 좀 더부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