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보살 하다'라는 관용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척한다'로 뜻풀이가 나와 있다. 삼 년 전, 직업상담사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 면담했던 한 남자를 두고 일지에다 그 구절을 써놓고 별표까지 해놓은 기억이 있다. 유별났다는 얘기다.
고용센터 일자리 상담 창구에 하루는 점잖아 보이는 40대 남자가 찾아왔다. 당시 나이가 44세, 부산 아무개 국립대학교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공조냉동기계기사 자격을 보유했으며 소방·공조·위생 설비 업무 경력만 11년이 넘는 자칭 고급 기술자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정작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누나 명의로 되어 있는 원룸에 얹혀 살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하다고 우는 소리만 해댔다. 때꺼리 살 돈도 없다면서 상담원에게 돈을 빌려 달라질 않나, 상담원 책상 한 켠에 놓여진 과자, 귤 따위 간식거리를 스스럼없이 달라고 해 그 자리에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 바람에 사정이 정말 딱한 줄 착각할 뻔했다.
신수 멀쩡한 사람이 궁상이란 궁상을 다 떨 땐 그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면서 그 구직자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보려는 찰나, 내 눈에 무언가가 포착됐고 구직 검색을 잠시 멈추고 고급 기술자라는 남자에게 물었다.
- 밥 사 먹을 돈 한 푼 없다는 분이 주머니 속에 든 담배는 뭡니까?
짐짓 놀라는 눈치였으나 이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변명으로 얼버무렸다. 생계가 막막하다면 기초생활수급 상담부터 우선 받아 보시라고 다른 창구를 안내했더니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어려운 처지임에도 구직에 열의가 별로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 뒤 구직 상담을 재개하기로 함. 아닌 보살 하기가 여간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