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인 로저 스페리 교수는 분리뇌 증후군 환자의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서로 다른 의식을 갖고 별개의 자유의지를 수행함을 보여주었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행동하는 양상을 관찰하면 눈에 띄는 점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뇌가 제공하는 정보가 없을 때 왼쪽 뇌는 자신이 수행한 행동에 대해 일관된, 그러나 틀린 설명을 지어내서 말한다는 것이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 사이에서 정보 흐름을 주도하는 뇌량을 제거한 환자한테 오른쪽 눈으로만 자동차 그림을 보도록 했다. 그런 뒤 환자에게 무엇을 봤느냐고 물어보자 환자는 주저없이 "자동차를 보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왼쪽 눈으로만 보게 한 환자(이 경우에는 오른쪽 뇌에만 정보가 도달한다)는 같은 질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대답은 좌뇌가 하기 때문). 이는 예상했던 결과다. 왜냐하면 왼쪽 뇌만이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쪽과 왼쪽 뇌 간의 연결통로인 '다리'가 끊겼기 때문이다.
스페리는 두번째 실험에서 더욱 흥미있는 결과를 접하게 된다. 이번에는 환자에게 자동차 그림을 왼쪽 눈에만 보여주고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환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그의 왼손으로 여러 가지 물건 그림(자동차, 집, 공 등) 중에서 아무 것이나 하나만 집어 보라고 하자 환자의 오른쪽 뇌 조종을 받는 왼쪽 손이 자동차 그림을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답은 "모르겠다"가 돼야 한다.
그러나 그 답 대신 분리된 뇌를 가진 환자의 왼쪽 뇌는 거짓말을 했다. 어떤 이는 자동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또 다른 이는 우연히 자동차가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단순히 오른쪽 뇌가 자동차의 그림을 보았기 때문에 선택했는데도 일관되지만 틀린 설명을 한 것이다.
스페리는 뇌가 유전적 프로그램과 뇌의 연결선들에 기반을 두고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되었기 때문에 단지 기계적, 자동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왼쪽 뇌가 우리의 행동을 관찰한 뒤 그러한 행동을 한 동기를 만들어내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단편소설 「속죄」는 분리뇌 수술을 받은 남자의 피아노 배우기를 그렸는데 로저 스페리의 학설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은 가전업체 설계과장으로 일밖에 모르는 중년 남자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피아노를 배워 마침내 연주 발표회에 선다는 줄거리다. 우연히 스페리의 연구를 보게 된 남자는 일밖에 모르던 자기 인생에 대해서 우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뇌와 접속하고 싶었고 저명한 뇌의학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원하던 직업을 알아냈다. 그의 우뇌는 피아니스트가 되길 원했던 것이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강사가 그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한 남자의 마음을 짓밟았습니다. 속죄하고 싶습니다."
만약 로저 스페리 이론이 옳다면 인간은 의지나 결정의 자유가 없는 기계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걸까. 아니, 자유 의지라는 게 있긴 한 걸까. 행동의 주체가 아닌 행동의 부산물이 인간의 의식이라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도 공염불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