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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부메랑

by 김대일

모욕이라는 두 글자에 대해 철학자 김용석은 사회적 배제의 전략이란 정의를 내렸다. 모욕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상대를 사회에서 배제시켜 모멸감의 정도를 상승시키고 결국 모욕을 완성하는 것이다. 당한 사람이 심하게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배제의 효과' 때문이다. 또한 배제된다는 것은 결국 모욕에 반박할 기회조차 순식간에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욕을 가한 사람은 '사회' 안에 있고, 모욕을 당한 사람은 그 밖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차별'의 이름으로 모욕을 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묵인 내지는 '공인'된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장애인, 빈곤층 사람들, 학벌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차별은 곧 모욕이 되어왔다. 만일 그 사람들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상태임을 확인하면서 다시 한 번 참담하게 배제시키는 것이 된다. 이미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그 차별을 부각시키는 것은 사회적 이중 배제로 심한 모욕이 되는 것이다.

철학자는 모욕을 어찌 보면 매우 인간적인 특성이라고도 했다. 다른 동물들은 모욕하지 않고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패퇴한다. 그 중간은 없다. 모욕은 확실한 승리나 패배, 또는 정복이나 굴종이 아닌 그 중간의 묘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것인데, 동물들은 이런 고도의 수책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모욕이 인간의 특성이라면 고도의 언어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인간은 주로 언어로 모욕을 주기 때문이다. 바꿔서 말하면 적어도 모욕의 의도를 언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모욕의 행위도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배려 없이 감수성이 메마른 상태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리 약한 모욕이라도 사람 사이에서 자칫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모욕당한 사람에게 복수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일상생활에서는 그것을 또 다른 모욕으로 되갚으려 한다. 대체로 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려 하는데(남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당한 사람은 역시 남들 앞에서 모욕을 되돌려주려 한다), 그 강도가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모욕이 더 큰 모욕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사람들은 무심코 또는 매우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지만, 그것은 복수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깎새가 견습생으로 무료 이발 봉사를 다니던 때였다. 이발은 애저녁에 끝났는데도 갈 생각은 않고 머리를 다시 손 봐달라고 떼를 쓰는 40대 사내를 향해서 무심코 "여기서 더 깎으면 병신처럼 보입니다"라고 지껄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내는 벌떡 일어나 둘렀던 커트보를 험하게 풀어헤쳐 깎새한테 집어던지더니 "병신 머리 깎아 주는 너 참 잘났다, 씨발새끼야!" 쏘아붙이고는 나가 버렸다.

그 사내는 한 쪽 팔을 전혀 못 쓰는 장애인이었다. 깎새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도.


* 김용석, 『두 글자의 철학』, 푸른숲, 2005, 155~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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