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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이 소설을 읽는다기에

by 김대일

『망원동 브라더스』를 쓴 소설가라 『불편한 편의점』이란 소설을 새로 냈을 때 기대감이 커 엔간해서는 안 사는 신간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책이 나온 해 베스트셀러로 꽤 잘 팔렸나 보더라. 난해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이 술술 읽히는 소설은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이었다.

사전조사를 충실히 했다는 후일담이지만 개연성을 떠받칠 리얼리티 획득에는 실패했다. 소설가로서 순백의 동화童話에 검댕을 살짝 묻히는 작위를 가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끌어내는 영리함을 발휘하는 수완은 훌륭했을지 모르나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괴리감이 더 커 읽는 내내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편의점을 꾸리는 이를 접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리얼 애환을 간접 체험한 이상 소설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은 까닭이겠다.

알바를 안 쓰는 게 아니고 못 쓴다고 했다. 사람을 쓰면 남는 게 없어서였다. 해서 주간에는 아내가, 야간에는 자기가 번갈아 가며 편의점을 붙들고 앉았다고 머리털과 수염이 덥수룩한 채 밤잠 못 자 안색이 초췌한 중년 남자가 커트와 염색을 주문하면서 푸념했다. 그는 깎새 점방에서 버스로 두어 코스 떨어진 동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단골손님이었다. 격월로 깍새 점방을 찾는 남자는 늠름한 풍채만큼이나 빠지지 않는 인물을 가진 위인이지만 올 적마다 더벅머리에 피곤이 덕지덕지 낀 추레한 몰골을 해 보는 이를 짠하게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다.

편의점을 해 목돈을 챙겼다는 친동생이 옆구리를 자꾸 찌르는 바람에 덩달아 편의점에 뛰어들었을 땐 풍요로운 노후를 꿈꾸기에 충분했었단다. 하여 앞으로 펼쳐질 미래야말로 장밋빛 인생인 줄 착각했었다나. 벌 만큼 벌면서 슬기롭게 여가를 선용하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는 즐거움은 마이크 타이슨이 말한 불멸의 명언,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처럼 김칫국부터 마시고 꾼 백일몽에 불과했다.

한 집 건너 편의점인 무한경쟁 구도에 뛰어든 것도 버거운데 자리잡은 목까지 좋지 못한 불리함을 만회하자니 인건비 아끼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알바비에서 벌충해야 그나마 남는 게 생기다 보니 부부는 오로지 편의점에 목을 매는 신세로 전락했다. 아내가 주간 근무를, 자기가 야간 근무를 맡고부터 단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쉬지를 못하니 바깥 용무 엄두가 날 리 없었다. 아침에 아내와 교대를 하면 곧장 귀가해 유통기한 지난 김밥, 샌드위치 따위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잠자기 바쁘다. 시간 되면 다시 편의점에 가서 밤을 새는 일상을 반복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 하루에도 여러 번 자책을 하지만 이런 생활 자체를 전복시키자면 빌어먹을 편의점을 때려치우는 게 상책이지만 마땅한 대안이랄 게 없으니 마음만 괴롭다며 울상이 되어 버린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회한이 짙게 그늘진 무기력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참 괴로운 일이다. 제삼자임에도 답답한 심사를 억누르지 못해 외람된 줄 알면서도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꼭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할까요?"

깎새 주제에 건방지다며 주먹을 날린들 고대로 맞고 버틸 각오였지만 안 날아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크게 한숨을 쉬더니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대꾸할 뿐.

막내딸이 책장에서 꺼낸 책이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요즘 소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녀석이라 독서 앙양 차원에서 말릴 까닭이 없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개연성 확보에 실패한 판타지물이나 다름없는 소설을 읽어 현실을 자칫 왜곡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솔직히 더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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