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려? 말어?

by 김대일

세상을 하직한 그리운 친구 L은 생전에 방학 시즌만 되었다 하면 마누라와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다. 방학이라는 긴 휴가를 박학다문하는 발판으로 삼았다는 측면에서 부부교사다운 교육적 발상이 아닐 수 없었는데 기실 속내는 딴 데 있었다. 방학과 해외여행이라는 시공간적 수단을 활용해 학기 중에 쌓였던 부부 사이 회포를 원없이 푸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금슬이 지나치게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생전 친구는 해외여행이 정기적인 이벤트로 자리잡은 이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거리낌없이 이뤄지는 섹스가 로맨틱하게 진화한 덕분에 운우지정이 갈수록 드라마틱해졌다며 듣는 깎새 염장을 지르다 못해 아주 아작을 냈더랬다. 오직 섹스만을 위한 외유라니, 에로틱하고 낭만적이면서 변태적이기까지 하다고 맞받아친 기억이 생생하다.

올 8월 깎새는 자기 생일에 즈음해 마누라한테 딸애들과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가진 뒤 호텔급 모텔을 잡아 부부만의 시간을 걸쭉하게 가져 보는 게 어떠냐는 음란한 제안을 했는데 의외로 선선히 승낙을 받았다. 그 덕분인지 생일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정욕에 총각 시절 이래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던 아랫도리 뻐근함까지 가세해 새삼 생기가 도는 기분에 취해 느물거렸다. 허나 부부교사처럼 활용할 시공간적 수단이랄 게 변변하지 않은 깎새 부부로서는 비록 생일이라는 기념일을 빙자해 일상의 전복을 꾀한다손 가공할 수준이 아닌 까닭에 이런저런 복병이 겹치는 바람에 무위에 그치자 오직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득그득 쌓인 탓에 당장이라도 풀지 않으면 터져 버릴 것처럼 불끈불끈하는 아랫도리를 화장실에서 용두질로 달래느라 애를 꽤 먹은 깎새였다. 가련하게도.

정재승 교수가 한 일간지에 연재한 시리즈에는 인간이 평생 섹스하는 횟수를 기술한 내용이 있어 소중하게 메모를 해뒀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나누는 섹스 횟수는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이라고 한다. 물론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평균값은 다르겠지만.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할 때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우리가 평생 섹스로 보내는 시간은 약 1,290시간, 날짜로 따지면 53.75일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두 달 가까이를 섹스를 하며 보낸다.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중 <'성과학'과 만족도 연구>, 한겨레신문, 2016.11.26.)

야살스러운 이벤트는 갱년기에 접어든 마누라와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기획한 것이었다. 마누라와 섹스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십 년 넘게 살 부비며 살다 보면 살짝만 스쳐도 는실난실 춘정이 이는 야릇함 따위는 먹고 죽자 해도 없어진 지 오래다. 드물게 두 딸이 동시에 집을 비우는 절호의 적기에도 반짝 입맛만 다시다가 이내 귀찮아져서 각방에 돌입하고 만다. "가족들끼리 그러는 게 아니야"라는 한국형 섹스리스를 고대로 답습하는 성싶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헌데도 그 성욕이라는 게 참으로 요사스러워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지만, 욕실에서 마누라 샤워하는 소리에 느닷없이 아랫도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떤 소설 표현을 빌자면 '갈래기(발정기) 도진 강아지'마냥 주체하지 못할 때가 또 없진 않다. 그러면 "오늘 밤 어때?"란 말은 차마 못 하겠고 마누라 눈치를 슬슬 살피며 부부 합환의 기회만 엿보기도 한다. 허나 섹스가 내가 원한다고 너도 원하는 건 또 아니라서 남의 속도 몰라 주고 방문을 닫아 거는 마누라가 야속해 함께 산 날이 몇 갠데 꼭 말로 해야 알아먹겠냐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 마누라 등판에도 대고 쏘아붙일 뿐이다.

한창훈 소설가가 쓴 짧은 소설이 그런 깎새를 대변하는 듯하다. 읽고 또 읽어도 전혀 싫증이 나질 않고 오히려 참았던 욕정까지 용솟음친다. 이쯤 되면 여느 빨간책, 야동이 부럽지 않게 야하고 재밌다. 여세를 몰아 오늘밤 슬쩍 건드려? 말어?

주낙질하러 배를 띄운 오씨는 심사가 뒤틀려 있다. 뭔가 가득 차서 해소해야 할 필요가 충분한데 눈치껏 고쟁이 한 번 내려주지 않은 아내 세포댁이 야속해서다. 세포댁은 세포댁대로 고되다. 사업마다 털어먹는 이혼한 아들이 두 아이 슬쩍 내려놓고 또 일 벌이러 나가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애 농사 짓느라 뜬금없이 쎄가 빠져서다.

(···)

돼지 비계 쪼가리 하나 없고 날 추운데 멀국도 안 챙겨 왔냐는 둥 밥 투정을 부리지만 실은 서방 홀대하는 세포댁이 너무 서운한 오씨. 죽은 시엄씨를 다시 모시는 게 낫지 죙일 애새끼들 치다꺼리에 정신도 하나 없고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서방이라고 뭐하나 거들 생각은 안 하고 그것만 안 준다고 떼를 쓰는 게 서운한 세포댁.

(···)

마음이 꼬이니 일도 덩달아 꼬이는지 갑자기 배 엔진이 꺼져 버린다. 프로펠러에 적잖은 밧줄이 단단히 감겼기 때문이다. 낫 감아 묶은 대나무를 집어넣어 낫질을 해보지만 되레 낫 모가지가 쑥 빠져 버렸다. 되는 일 없이 심사만 꼬일 대로 꼬인 오씨는 밧줄 풀러 바닷물로 뛰어든다. 고투 끝에 밧줄은 풀었지만 오씨가 정신을 잃고 그대로 가라앉을 찰나, 세포댁이 갈고리로 걸어 올렸다.

(···)

눈 떠보니 홀랑 벗겨져 있는데 똑같이 벗어 알몸인 세포댁이 언 몸을 꼭 껴안고 있는 것 아닌가. 가슴께를 누르느라 양 젖이 옆으로 잔뜩 퍼져 있고 아랫도리는 행여 물 샐 틈 있을세라 촘촘히 밀착한 상태이며 그 위로 적잖은 엉덩이 두 개가 달처럼 포실하게 떠 있는데 두 팔로 목과 머리를 껴안고 그렇게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이다. 온기는 세포댁에게서 온 거였고 그만큼 그녀는 떨고 있었다.

"정신 좀 드요?"

"이 사람아…."

그는 입이 차마 안 떨어졌다. 굳이 말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 앞뒤 볼 것 없이 군용모포 끌어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아내를 꼭 껴안는다. 석 달 만이다. (한창훈, 「주유남해舟流南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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