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by 김대일

금쪽같은 두 딸 놔두고 아들 키우는 재미가 어떨지 입맛 다신 적이 지금까지 딱 두 번 있다. 단 두 샘플에 현혹돼 남아선호 기조에 굴복한 건 아니지만 저렇게 키운 아들자식이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으스대는데도 지지않고 맞대꾸할 자신이 별로 없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깎새를 흔들어 재낀 걸까.

지난 일요일 순둥이 삼형제가 행차했다. 늘 아빠와 같이 오더니만 그날은 엄마가 대신 삼형제를 이끌고 점방을 찾았다. 초4짜리 큰형과 이제 막 입학한 쌍둥이 동생 둘은 동행하는 이가 아빠건 엄마건 간에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다. 무료해지면 장난칠 법도 한데 그 장난이라는 게 상대방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는 게 다다. 용변이 급한 아이는 화장실 위치를 깎새에게 물어본 뒤 말없이 다녀온다. 다른 손님한테 방해될까 몹시 두려워하는 부모가 매너 교육을 조기에 그것도 아주 단단히 시킨 까닭인데 그걸 또 고분고분 따르는 게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손님이 밀릴지언정 신경을 더 써주고 싶은 아빠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깎새다.

깎새가 착한 아이, 안 착한 아이를 가르는 기준은 무척 단순하다. 머리 깎을 때 직수굿하게 얌전을 빼면 착한 아이, 몸뚱아리 뒤척거리기 일쑤고 바람개비마냥 머리까지 팔랑거리다 못해 바리캉만 살짝 갖다 대도 '아야!' 외마디소리를 질러대 정신 사납게 하는 아이는 아이라도 진상 손님 각이다. 그야말로 깎새다운 잣대다 보니 믿을 구석이라곤 별로 없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 점방 안에서 드러나는 버르장머리만으로도 남들로부터 어떤 평판을 들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깎새는 아동심리학자인 양 자부하는 바이다.

동생들과 불과 세 살 터울이 졌을 뿐인 큰형은 또래답지 않게 의젓해서 되우 듬직하다. 커트보를 두르기 전부터 목석연한 채 깎새 손놀림에 자기를 오직 맡길 뿐이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면 수줍게 "고맙습니다" 공치사를 잊지 않는다. 이런 아이가 안 이쁘면 누가 이쁘단 말인가. 쌍둥이 중 막내는 눈웃음이 일품이다. 장난기가 그득그득한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게 꼭 깎새더러 "아저씨를 믿지만 살살 좀 해주세요" 아부를 떠는 듯해 귀엽기 그지없다. 쌍둥이 중 형은 제 큰형과 쌍둥이 동생 장점만 반반 섞어 놓은 듯한 처신으로 셋 중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비춰진다. 삼형제를 잘 키운 부모를 추어올리려는 수작으로 깎새가 버릇처럼 씩둑거린다.

"똑같이 큰형 밑에 쌍둥이 형제긴 한데 얘네들보다 한 오륙 년 빠른 다른 삼형제가 있어요. 걔네들만 왔다 가면 혼이 쏙 빠질 지경이라니까. 요즘 뜸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순둥이 삼형제와 비교되던 선배뻘 삼형제 엄마는 첫 방문부터 깎새와 한바탕했더랬다. 중학생 큰형 머리를 투블럭으로 해달래서 깎아줬더니 아이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놨다며 그 엄마가 먼저 발끈했다. 투블럭을 알기나 하냐는 막말로 엄마가 선전포고를 날리자 이건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어 투블럭 다른 버전이 또 있냐며 깎새가 되물었더니 미장원은 저렇게는 안 깎았다면서 숫제 깎은 머리 도로 갖다붙여 놓으라고 억지라도 부릴 판이었다. 애들 엄마가 알고 있던 건 옆머리만 투블럭이고 뒷머리는 상고머리로 깎는 변형 투블럭이었다. 그걸 자주 가는 미장원에서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귀찮아 생략하고 편하게 투블럭, 투블럭 하다보니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첫인상이 엉망이었으니 이후는 안 봐도 뻔했다. 장발을 한 삼형제가 나타나면 일타삼피인 매상보다 저걸 어찌 깎아낼지 짜증부터 드는 깎새였다. 하나같이 머리숱은 무진장에 철사와 맞먹는 억센 참머리라 연달아 셋을 깎아내야 하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일도 일이거니와 동생 쌍둥이가 이발의자, 대기석 가리지 않고 들썩들썩 한시도 가만히 안 있는 꼴은 너무 성가셨다. 이발의자에 앉은 아이는 가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지겨워 배배 꼬길 예사고 대기석에서 기다리던 아이는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마냥 장난칠 거리를 찾아 점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을 나대다가 그게 지루해지면 무람없이 점방 문을 열었다 닫았다 야단법석이었다. 이도 저도 재미가 없으면 엄마한테 매달려 점방이 떠나가라 보채기 시작하면 깎새 인내력은 극한에 이르게 된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이 소란을 피울 적마다 "아들만 셋을 키우다 보니"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지만 공감 갈 리 없다. 인구소멸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 현실에서 아들 셋을 낳고 키우는 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겠지만 낳은 것만으로 부모 도리가 끝났다고 여기는 건 대단히 큰 오산이다. 낳았으면 어떻게 키울까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 똑같이 아들만 셋인데도 순둥이 삼형제가 철부지 어른보다 더 의젓한 게 그 부모가 아이들 버르장머리를 잘 길들였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아들만 셋 키우다 보니" 운운하면서 제 자식들 허물만 감추려 드는 수작이 얼마나 근천스러운 핑계인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효과까지 발휘한다.

충북 음성 사는 마누라 바로 손위 언니 아들내미는 해병대를 제대한 뒤 제 손으로 학비를 벌어 전북에 소재한 대학교에 복학했다. 장모 슬하에 8녀1남이 포진한 처가는 곁가지의 곁가지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대가족인데 유독 그 녀석만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픈 까닭은 어릴 적부터 하는 행동거지가 처가 조카들 중에서도 유독 귀엽고 기특해서였다.

녀석이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여름휴가를 처가에서 보내던 깎새 가족이 음성 처형네, 다른 식구 몇몇과 어울려 음성 근처에 있다는 자연 실외 수영장으로 당일치기 피서를 가기로 했다. 깎새 가족과 음성 처형네(슬하에 2녀1남)가 깎새가 모는 차로 이동했다. 정원을 넘긴 차 안은 복작복작했다. 얼마 안 떨어진 근방이라고는 해도 한 시간 넘게 운전해야 해 무료하기도 해서 깎새가 녀석한테 무심코 농을 치듯 말을 걸었다.

"좋아하는 가수 있니?"

"리쌍 노래가 착 감기데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똘망똘망하게 대답했다. 맹랑했다.

"착 감기는 게 뭔데?"

"뭐랄까, 노래가 꼭 내 얘기 같아서요."

"네가 어떻는데?"

"말하면 이모부가 이해하겠어요? 아무튼 리쌍 노래는 감동스러워요."

<Ballerino>,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 <눈물>, <내가 웃는 게 아니야> 따위 리쌍이 부른 어떤 노래가 녀석을 참 감기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내놓은 감상평은 예사롭지 않아 차라리 신선했다.

"네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은 어때? 아이돌이라든가 말이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가사나 떠들고 춤만 추다 마는 가수는 내 취향이 아니에요. 구려요."

단호한 대답 뒤로 자기가 선호하는 가수 몇몇을 더 호명하는데 하나같이 그 녀석 막내삼촌뻘이 좋아할 만한 가수들, 제 또래 앞에서 주워섬겼다간 가차없이 왕따 당하기 십상인 중견 가수 이름을 줄줄 읊어댈 때는 남 같지 않은 동질감 같은 걸 느끼기에 충분했다. 기껏해야 국민학교 4학년짜리밖에 안 됐으면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가 부르는 팝송 또는 흘러간 영화음악 OST로 대변되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에 푹 빠져 죽자사자 라디오를 끼고 앉았거나 그 라디오에서 이문세, 이수만, 이택림 등 당시 개그맨 끼가 흘러넘치는 가수들이 등장해 디제이인 이종환과 어른이면 몰라도 머리에 피가 안 마른 아이가 들어서는 도통 알아먹기 어려운 내용으로 노닥거리는 그게 너무 좋아서 낄낄대곤 하던 제 딴에는 조숙했던 깎새와 겹쳐도 너무 겹쳤던 것이다.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3대 여신 사진 책받침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당시 꼬마들 행태가 유치해 보였던 것도 닮은꼴이었고. 부산 서면 바닥 코팅 가게를 샅샅이 뒤져 3대 여신 고모뻘쯤 됨직한,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 사진을 어렵사리 구해 책받침이 닳도록 뽀뽀를 해대는 거나 리쌍 노래에 감동하는 거나 애늙은이로는 도긴개긴이라서.

음악 취향이 겉늙어서 혹시 되바라진 녀석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단지 어린애 입을 빌렸다 뿐인 말투가 절제미를 뽐낼 뿐만 아니라 제 부모를 매우 곡진하게 섬기고 누나와 여동생을 아끼는 말도 아낌없이 늘어놓을 줄 아는 게 여간 기특하고 대견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완전히 척을 진 음성 손위 동서한테 전혀 꿀리지 않는 깎새이지만 그때 처음 부러움과 시기심에 열패감까지 더했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 뒤로 처가엘 들러도 녀석을 쉬 만나지는 못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진 녀석이 외갓집에 얼굴만 슬쩍 비추다 가는 부산 이모부와 재회하기란 일정을 일부러 맞추지 않는 한 어려웠다. 그저 제 엄마인 처형을 통해 근황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음성읍에서 선수급 실력을 자랑하는 정구 마니아이자 체육기구 판매상인 제 아비 영향이 컸는지 자식한테 기대치가 높은 아비 강요가 심했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테니스, 육상, 배구 따위 스포츠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고 했고 그래서인지 곰돌이 푸를 연상시키던 도톰해서 귀여웠던 녀석의 볼살은 온데간데없고 키는 멀대 같이 커버렸고 몸매는 홀쭉해졌다고 하자 사실인지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한편으로 이런저런 불운이 겹쳐 운영자금이 달려 빚을 지게 된 아비를 도우려고 인근 인삼밭에서 일당벌이 일꾼을 자청했었다는 말을 듣고는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다며 이모부가 괜히 뿌듯해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또 흘러 녀석이 대학 입학을 준비할 무렵 드디어 녀석과 재회할 기회가 생겼다. 수능을 마치고 부산 소재 대학교 체육학과 두 군데에 지원해 실기시험을 치려고 사흘 정도 부산 깎새 집에 머물렀다. 지원한 두 군데 중에서 충북 음성 집으로 되돌아가는 날 아침에 실기시험을 치른 대학교엘 무척 들어가고 싶어했는데 이유가 그 학교 체육학과는 교직 이수가 가능하다고 해서다.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게지.

아침 9시에 실기 시험이 잡혔다는 그 대학교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고 시험 끝나길 기다렸다가 픽업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 줬다. 시험 도중 두어 번 실수를 해 실망스럽다고 했다. 꼭 입학하고 싶었지만 실수가 너무 뼈아프다며 체념하는 눈치였다. 실기시험은 수험생의 능력을 검증하기는 차원이긴 하지만 시험에 임하는 수험생의 자세도 체크를 할 테고 그런 차원에서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한 네가 후한 점수를 받아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을 거이니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위로를 해댔다. 그런데도 녀석은 예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그렇겠죠?" 맞장구를 쳤다. 오히려 고마웠다.

다른 지역 대학교 실기 시험이 또 예정돼 있어서 음성집 대신 체육학과 지망생들과 합숙을 하는 체육학원이 있는 청주로 가야겠다며 티켓을 끊었다. 늦은 점심을 먹은 뒤 햄버거 체인점에 들러 출발 전까지 잠깐 얘기를 나눴다. 리쌍을 좋아한다고 이모부에게 말했던 걸 똑똑히 기억해냈다. 성미가 괴팍한 제 아비가 여전히 불감당이지만 몸속에 종양(악성은 아니지만)이 발견된 뒤로는 전전긍긍하는 아비가 왠지 측은해졌다고 실토했다. 체육학과에 지원하다 보니 자기 밑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솔찬해서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어미가 너무 안쓰러워 시험이 끝나는 대로 돈 될 만한 아르바이트를 해 받은 만큼 되돌려 줄 거라고도 했다. 만약 부산 말고도 다른 지역(녀석은 부산 두 곳, 청주 한 곳, 전북 소재 대학교 한 곳에 지원했다)까지 동시에 합격한다면 꼭 부산으로 내려오고 싶다는소망을 힘주어 밝혔다.

도착하면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걸 보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왔었다. 애교는 못 부려도 산처럼 묵직해 듬직하기 이를 데 없는 게 아들 키우는 재미라고 제 딴에는 잘 키웠다고 자랑질하던 아들 둔 부모 말이 떠올랐다. 순둥이 삼형제, 음성 조카 보면 꼭 허세만은 아닐 거라 부러워진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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