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알리바이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 설명은 다음과 같다.
알리바이(Alibi)라는 말은 라틴어 'alius ibi'에서 나온 것으로 '다른 곳에'라는 뜻이다. 즉 사건 현장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었다는 의미로 공식 용어로는 '현장 부재 증명'이라고 한다. 범죄 혐의자들은 알리바이를 제시하여 범죄 현장 이외의 다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런데 범죄 혐의자들이 각자 알리바이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모두 범죄 현장에 있었다고 '알리바이 없음'을 주장한다면 범인을 가려낼 수 없게 된다. 모두 범인임을 자처하면 그것을 가려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도 범인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혐의자들이 모두 '알리바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두 글자의 철학』, 푸른숲, 2005, 245쪽)
철학자 김용석이 소개한 전형적인 책임 회피 궤변 방식 중 두 번째 대목 일부다. 책임의 소재를 '모두'에게 둠으로써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예를 들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하고 사과하는 경우를 두고 철학자는 '책임 알리바이 역설'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책임 회피 궤변 방식 그 첫 번째는 무엇일까. 책임의 소재를 사람에 두지 않고 상황이나 주위 사정에 전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원인을 인격의 결함이나 나태, 무능력에 두기보다는 '환경'에 두고자 하는 사회학적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흔히 "역사와 전통 그리고 관습이 그러하고 현재 사회의 구조적 조건이 그러한데, 어찌해볼 도리가 있겠는가" 같은 말로 표현된다. 책임의 소재를 항상 '나' 밖의 그 무엇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그 구조적이고 상황적인 문제를 매우 '논리적'인 설명으로 치장해서 그럴듯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때로는 더 큰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일의 원인을 아예 '본성' 같은 거의 절대적인 것에 통째로 떠넘기기도 한다. "정치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라든지, "인간의 본성인데···.", 또는 "완전한 인간은 없다"라고 하는 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속성, 본성, 원래의 것 등을 주장하는 것은 책임 추궁을 근본에서부터 피하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방어'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책임 회피의 의도가 강하다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같은 책, 244~245쪽)
철학자는 단호하게 밝힌다. 책임의 소재는 단수로 표시되어야 한다고.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책임, 그 어느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또 책임의 영역에는 사적 인간관계와 공적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역설한다. 사적 인간관계에서는 '네 책임인지, 내 책임인지' 책임의 소재를 지나치게 따지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 상호 포용과 책임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지나치리만큼 따져야 한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은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며,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무책임한 결과에 대해 벌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임責任이란 두 글자를 철학자는 이렇게 정의했다.
'꾸짖을 책'과 '맡길 임'으로 구성된 말. 일을 맡기고 결과에 따라서 벌을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