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를 픽업해 퇴근하던 길이었다. 러시아워 도로는 그날따라 유난을 떨었고 가뜩이나 대화가 부실한 부부 사이에 적막감만 더해갔다. 그나마 라디오라도 틀어놔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간 둘 다 지레 말라죽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라디오에서 귀에 아주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상황이 반전됐다. 마누라가 불쑥 "이 노래 옛날에 당신 컬러링 아니었나?" 물었다. 가만 들어보니 가수만 다르지 노래는 맞다. 마이클 부블레가 넬리 퍼타도와 듀엣으로 리메이크한 <Quando, Quando, Quando>가 십여 년 전 깎새 컬러링이었다.
오래됐는데도 마누라가 대번에 기억해내는 걸 보면 넌더리가 오죽 났으면 그럴까. 하기사 남편한테 전화를 걸 적마다 어김없이 튀어나오던 진절머리나는 멜로디를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용건이 있어서 연락을 했을 테지만 본론은 제쳐두고 첫 일성이 "컬러링 좀 바꿀 순 없어?"였으면 말 다 한 셈이다. 한 술 더 뜰까?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바꾼 컬러링이 <Something Stupid>였는데 팔자 오그라지게 웬 청승을 그리 떠느냐고, 지금 반항하는 거냐며 어찌나 구박을 해대던지(로비 윌리엄스&니콜 키드먼 버전은 나름 경쾌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음악적 취향이 극과 극인 부부다. 신나고 빠른 비트를 선호하는 마누라로선 감미롭지만 처지기 일쑤인 재즈풍은 있던 복까지 날아가게 할 요물로 아예 낙인찍어 곱게 들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마누라를 필두로 두 딸까지 합세해 제발 소원이라면서 애걸복걸해도 다른 데는 몰라도 거기만은 입장불가라고 요지부동인 깎새가 절대 금지구역으로 선포한 곳은 다름아닌 노래방.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갇혀 처음부터 끝까지 댄스곡 일색일 한두 시간을 견딜 엄두가 안 나서다. 기실 안 가는 게 아니고 못 간다는 게 솔직한 답변이겠다. 생리에 안 맞는 짓을 하다간 자칫 득병하기 십상이라. 그러니 마누라와 음악적으로 접점을 찾는다는 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꽌도' 소리야 예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가락인지라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구슬프게 튕구는 기타 소리가 뒷배경으로 깔리면서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파두를 읆조리는 여자 목소리가 이어지자 마누라 인내력에 한계가 드러났다.
"딴 거 틀면 안 돼? 누가 죽었대?"
하지만 간뎅이가 부었는지 깎새는 운전대 잡은 놈이 임자라는 듯 무시해 버린다. 대신 볼륨만 살짝 낮춤으로써 타협의 제스처를 마누라한테 보인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면 애초에 라디오를 켜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