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라도 남겼어야 했는데

by 김대일

휴무일이던 그제 화요일, 한 달 전에 예약한 비디오 삼킴 장애평가(연하검사)를 받으러 모처럼 양친과 해운대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짧은 나들이를 다녀왔다.

부친이 부쩍 변했다. 모친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이 본가와 담 하나 사이로 지척인 까닭이겠지만 매주 거의 빠짐없이 면회하러 들르는 부친이시다. 게다가 모친이 진료 차 종합병원 행차라도 할라치면 특별한 선약 아니고는 동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왕 한 차에 탈 바에는 뒷자석에 앉은 모친 옆이면 금상첨화련만 조수석을 꼭 고집하는 부친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동행하는 그 자체만도 어딘데.

3시 검사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가족은 검사실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휠체어를 탄 모친을 부친과 마주보게 했고 다리가 불편하다 해서 부친 옆에다 주욱 펴게 해드렸다. 눈 씻고 찾아봐도 맞는 구석이라곤 없으면서 살갑지 않은 기질만은 붕어빵인 노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하면 침묵 일변도일 게 뻔해서 분위기나 눅일 겸 자식이 알아서 입방아를 마구 찧어 댄다. 일전에 모친 문병 차 먼 걸음한 서울이모와 미국이모, 외숙모에 얽힌 뒷담화로 말머리를 뗐다. 시쳇말로 부친은 츤데레다. 겉으로는 인정 없고 쌀쌀맞은 듯 보이지만 돌아가는 날까지 외갓집 어르신들을 극진하게 대접한 내막을 전해 듣자 엔간해서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모친 입에서 "수고했어요"란 공치사가 뜻밖에 나왔고 부친은 괜히 쑥스러워했다. 고2짜리 깎새 막내딸이자 모친 손녀가 제 엄마가 물어보지 않는 한 중간고사 성적을 밝히지 않을 거라는 발칙한 꿍꿍이며 깎새 큰어머니이자 모친 손윗동서가 일하는 가게에서 3개월치 급여를 못 받은 것도 모자라 그 사장한테 돈까지 떼여 와사풍이 온 안타까운 사연에 이르기까지 잡담이 끊이지 않았고 가족은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마디로 흔하지 않은 이변이었다. 어떤 가족에겐 늘상 벌어지는 일상이 다른 가족한테는 희귀해서 기적같기만 한 사건이라면 어떤 수식어로 형언할 수 있을까. 역사적? 기념비적? 병원 한 켠에서 팔순이 다 된 노부부가 여지껏 목격된 적 없는 그윽한 시선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미주알고주알 수다 늘어놓는 장면에 넋이 나가 버려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큰 파도처럼 아쉬움이 몰려왔다 여태 가실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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