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생겨난 근원, 즉 어원을 좇으면서 그것을 통해 시대 현상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작업은 은근히 매력적이다. 얼핏 지금을 살피려고 옛날 것을 억지로 끌어 붙이는 견강부회 혐의가 없지 않다. 하지만 처음 어떤 말이 생길 무렵 그 말 속에 담으려고 했던 뜻을 언중 대다수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세월의 마모 작용으로 인해 그 형태가 뒤틀리고 의미마저 변이를 일으켜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딴판이 되어 버린 게 없지 않다손 그 원형에 매달리는 작업이 결코 쓸데없는 짓은 아니다. 예나 이제나 참된 이치를 향한 갈망은 다르지 않을 테니까.
<언어탐방>이라는 제하의 칼럼이 흥미롭다. 칼럼 저자는 김용석 철학자이다. 그는 어원을 빗대 본질을 탐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최근 칼럼은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내용이고 칼럼을 관통하는 주제는 '엔터테인먼트'와 '엔터테인' 역설이다. 현대인이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 활동으로 바빠진 탓에 사회관계가 소홀하고 소원해지는 역설에 봉착했다는 주장은 듣도 보도 못한 탁견이다. 칼럼 말미에 소개한 파스칼 명언,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데서 나온다"가 그래서 폐부를 찌른다. 중요한 부분만 발췌했다.
엔터테인먼트는 동사 ‘엔터테인’(entertain)의 명사형이다. 이 당연한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는 일이 오늘날 ‘지배적인’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엔터테인은 ‘서로’(inter)와 ‘붙잡다’(tenere)라는 뜻의 라틴어에 뿌리를 둔 프랑스어(entretenir)에서 유래한다. 곧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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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은 본질적으로 인간관계를 부드럽고 즐겁게 해주는 일을 가리키는 ‘사회적 개념’이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쓰인다. 그런데 품사가 바뀌면서 말의 뜻이 바뀌는 단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바쁘다(busy)라는 뜻의 형용사가 명사가 되면 총체적 의미의 사업(business)이 된다. 곧 경제적 개념이 된다. 동사 엔터테인도 명사 엔터테인먼트가 되면 총체적 의미의 오락이 된다. 곧 ‘문화적 개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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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늘날 무한 확장할 것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된다.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경로, 광장, 플랫폼은 매혹적으로 편재하며, 즐기고자 하는 욕구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연스레 유도된다. 엔터테인먼트로 풍요해진 삶에서 사람들은 문화 활동에 바쁘다.
그런데 문화 활동에 바쁘면 사회관계는 어떻게 될까. 소홀하고 소원해진다. 바로 여기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단어의 역설이 발생한다. 엔터테인먼트의 문화적 의미가 상승하면 엔터테인의 사회적 의미는 하강한다. 한때는 문화 행위가 사회관계를 좋은 쪽으로 매개한다고 여겼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람들의 관계는 돈독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각자 문화산업이 생산해내는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즐기기에 바쁘다 보면, 달리 말해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기 바쁘다 보면, 인간관계에 신경 쓸 겨를은 적어진다.
이 간단한 현상을 사회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간과하기 쉽다. 아마도 문화 활동이란 말이 주는 긍정적 품위 때문에 그것이 부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날 인간관계에서 이유 없는 폭력을 비롯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들이 증가하는 데에는 각 개인의 과도한 문화 활동이 무시 못 할 원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오락 활성화 사회’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관계는 소외된다.
오락 활동을 인간 이해의 열쇠로 보았던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시적 명언을 남긴 파스칼이지만, 이런 비판에는 그 특유의 ‘고상한 잔혹함’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사태를 의식하면 생각하기 시작한다. 단어의 의미도 의식을 자극하는 데에 미력이나마 소용된다. 엔터테인먼트가 풍요를 넘어 과잉으로 가는 문화적 상황일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사 엔터테인이 지닌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파스칼의 말에 현실감을 더하면 ‘인간의 불행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잊어버리는 데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김용석의 언어탐방- 엔터테인먼트: OTT 삼매경에 잊은 것>, 한겨레,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