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리터리시 규칙

by 김대일

리터러시literacy는 문해력이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으로써 음성적 읽기를 넘어 의미적 읽기까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역사 리터러시란 역사책에 쓰여져 있는 내용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역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는 걸까? 아무튼 한 역사학 교수가 쓴 칼럼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문해력, 즉 역사 리터러시 규칙을 채워 나가는 공간으로써 유용하다.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역사와 현실-역사 리터러시 규칙>, 경향신문)

칼럼은 4주에 한 번 꼴로 연재되고 역사 리터러시 규칙은 현재 9조까지 제시되었다.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0조

원하건 원치 않건 인간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공동체의 서사를 공유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역사적 존재이며, 모든 역사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0조이다.


제1조

누군가가 묘사한 역사가 너무 요즘 현실과 닮아서 십분 이해가 간다면 바로 의심해야 한다. 그 묘사는 역사에 충실하기보다는 현재적 문제의식에 충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다.


제2조

최대한 사실을 찾고 그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제3조

역사가 선악과 호오를 가르는 데 그치면 안 된다. 인간은 복잡하다.


제4조

당대의 맥락을 무시하고 현재적 관점이나 기준에 따라 과거의 사람들을 제멋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


제5조

역사에서 변화하지 않는 원칙은 딱 한 가지, 역사는 변화한다는 것


제6조

모든 역사상을 한 번에 밝혀줄 결정적 한 방은 없다.


제7조

내가 살아봤다고 그 시대를 다 아는 게 아니다.


제8조

매끄러운 서사를 경계하라.


제9조

감정이입만큼이나 ‘감정이출(出)’도 중요하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려는 목적으로 쓴 칼럼인데도 읽다 보면 자꾸 딴생각이 든다. 규칙에 등장하는 '역사' 자리에 '사람', '관계', 혹은 '처세'란 단어를 집어넣어도 문맥이 통하니까 그렇지. 제9조 내용 중 일부를 예로 들어보겠다.


‘감정이출’이란 대상과 나 사이에 일정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 데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 그 사건이나 인물에 깊이 몰입하게 되고, 그 입장에서 모든 상황과 결정을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확한 인과관계와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에 비해 ‘감정이출’은 인지적 공감으로 이어진다. 인지적 공감은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갖추게 되는 공감을 말한다. 역사학에서는 한 인물의 시점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련인들의 시점과 상황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인간과 사회는 복잡한데, 역사학은 그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만약 단순 명료하게 한 가지로, 혹은 한 인물의 시점으로 역사를 다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역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위 칼럼, 2024.11.13에서)


'역사' 대신 '사람'이나 '관계'로 바꾸면 카네기 저리 가라 할 만한 인간관계론이 완성된다. 어떤 사람과 엮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인간관계에 너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마음이 기울어져 버리면 전체적인 맥락, 사건의 인과 등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럴수록 감정이출을 통한 건조한 태도를 견지하라고 읽는 문해가 아주 틀린 건 아니리라. 의도했건 아니건 칼럼은 탁월한 처세술을 부록으로 실은 셈이다. 하기사 역사라는 게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변천하고 흥망했던 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보면 역사가 곧 사람이니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사람을 이해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꼭 일독하기를 바라는 칼럼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0821204400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209030001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504030002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727030002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920225700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110195000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306201500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5012132015

https://www.khan.co.kr/article/202407242032005

https://www.khan.co.kr/article/2024111320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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