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의 품격

by 김대일

어제 올린 글은 맞은편 이발소 12년 단골 손님이 깎새 점방으로 전향할 뜻을 밝힌 내용이었다. 그걸 끼적거리던 중 비스무리한 에피소드가 퍼뜩 떠올랐던지라 오늘 게시글로 내처 이어 볼까 한다.

사는 데는 깎새 점방 동네인데 친구 따라 꼼장어 먹으러 갔다가 알게 된 딴 동네 커트점(깎새 점방 동네에서 전철역 두 코스 거리)을 오랫동안 드나들었다는 손님은 근자에 비로소 깎새 점방이 눈에 들어왔다며 꼭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양 요란스럽게 굴었다. 그렇지만 이발하고 염색약을 바르는 깎새 동작을 실눈뜨고 꼼꼼히 살피는 걸로 봐서는 썩 미더워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집에서 가까운 데를 놔두고 멀리 다니는 바보짓을 저질렀다면서 호기롭게 전향을 선언했지만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난 발언인지 끝까지 간을 보려는 수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손님이 전에 뻔질나게 다녔다는 단골 커트점 원장 흉을 보느라 더 바쁘게 입을 놀리자 마냥 듣기 좋을 수만은 없었던 깎새.

"너무 성의없이 깎는 거야. 한번은 짝짝이로 깎아 놓아서 왜 이 모양이냐니까 머리가 떠서 그렇다면서 무스를 바르래잖아. 내 평생에 머리에다 뭘 바른 적이 없어서 기가 막히더라구. 그 다음부터는 원장인가 뭔가 하는 여자 대신 옆에 시다 종업원한테 깎아 달랬어. 원장보다 훨씬 잘 깎드만."

전부터 원장 하는 행상머리가 마음에 영 안 들었었는데 짝짝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겠지.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지. 아예 모르는 데라면 손님이 씩둑거리거나 말거나 냅두면 그만일 테지만 그 커트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깎새인지라 들을수록 거북한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점방을 개업하기 전까지 알바로 명절을 세 번이나 난 커트점이었으니까.

한 자리에서만 10년 넘게 장사한 이력에 저렴한데 실력까지 좋다는 평판까지 자자해 그 동네 주민뿐 아니라 원장 흉을 보는 손님처럼 전철역 두어 코스 거리는 우습게 여기며 내왕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양면적이어서 손님이 득시글거리는 데 비해 근무 여건이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손님들이 무지 몰리는 주말 근무에 나서는 알바는 점방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드는 손님들로 충격을 우선 세게 받고, 정해진 일당보다 곱절 이상을 부려 먹으려는 원장 심보 때문에 그로기 상태에 직면하고 만다. 늦어도 7~8분 안에 커트를 끝장 내는 원장 커트 기술은 신기에 가깝지만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해 밀리고 마는 염색, 염색 후 샴푸가 진을 치는 바람에 그야말로 진이 빠져 버린다. 커트가 자기 일 전부인 양 나머지 잡사는 나 몰라라 하고 알바한테 일절 다 미루는 원장 행태 때문에 오늘 이후로 넨장맞을 원장 면상을 다시 보면 개새끼라 작심하고 자리를 박차는 알바가 부지기수였던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데려다 앉히면 며칠 못 가 그만두는 까닭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정작 원장 본인만 모르는 게 문제라면 큰 문제였다.

아무튼 열악한 주말 근무로만 햇수로 2년 가까이 죽을둥살둥 발버둥친 덕분인지 개업하고 여지껏 별 탈 없이 순항하고 있는 깎새는 엔간해서는 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일꾼으로 변신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얄망궂은 원장 밑에서 버티며 전수 아닌 전수를 받은 장사 비법이 그 성공 요인에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일까. 어엿한 원장으로 이력을 쌓아 나가면서 그 원장한테 예전에 품었던 악감정은 스르르 사라지고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감정 이입이랄지 이젠 한통속이라는 동류의식 같은 게 더 크게 자리잡게 된다. 그러니 원장 흉보느라 한창 열을 올리는 손님이 탐탁할 리 없었다. 예전 단골 원장이 쉼없이 입방아에 오르내리자 말문을 막을 요량으로 깎새가 아는 척을 좀 했다. 그러자 의심쩍게 노려보는 손님.

"거기서 명절 세 번 쇤 알바였습지요."

행여 깎새 점방 단골 리스트에 새롭게 오른다고 해도 깎새로서는 이런 손님이 썩 달갑지 않다. 사정이 생겨 다른 데로 옮기면 거기서도 이런 식으로 원장 흉을 볼 공산이 커서다. 다른 데로 안 가게 흠 잡힐 짓을 안 해야겠지만 이 손님을 볼 적마다 안 가져도 될 부담을 부러 가져야 하는 그게 또 적잖은 스트레스라서. 다른 걸 차치하고 이발의자에 앉으면 말이 많아지는 손님을 깎새는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줏대가 확고한 손님은 제 볼일에만 집중할 뿐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건 머리를 맡긴 깎새를 신뢰한다는 방증이다. 말이 필요없으니까. 그러니 말이 많다는 건 깎새를 나만의 깎새로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미심쩍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신호이면서 여차직하면 부화뇌동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런 손님을 단골이라고 여길 순 없다.

깎새가 커트만 잘하면 만사형통일 성싶어도 신경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래저래 장사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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