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방을 찾으면 으레 머리 깎고 염색하던 단골(어림짐작해 깎새보다 열 살쯤 터울 질 젊은 축)이 엊그제 와서는 머리 깎고 염색 대신 두피마사지를 받겠대서 의외였다. 그런데 머리를 깎다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눈치를 깠더랬다. 아주 수북하진 않아도 젊은 축답게 머리숱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듬성드뭇한 데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짧게 깎는 스타일이어서 여차하면 영 볼품없을 성싶어 요령껏 깎아 나가려니 전보다 시간이 곱절은 들었다. 창창할 나이에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겠다 싶어서,
- 머리가 전보다 성근데….
- 그렇죠? 미치겠어요.
- 염색은 안 하는 게 좋겠어요.
- 저도 염색약 탓인가 싶어서 당분간 안 하려고요.
깎새 노릇을 하다보면 별안간 머리털이 숭숭 빠지는 바람에 좌절하는 손님들을 심심찮게 본다. 늙어 빠지는 거야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겠거니 체념하고 말면 그만이지만 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탈모 징후가 엿보이면 십중팔구 나라 망한 듯이 굴곤 한다. 딱 봐도 몇 가닥 없어 보이는데 호들갑은 오달지게 떠는 씨상이 손님한테는 망국의 설움을 혼자 짊어지게 놔두지만 평소에 묵묵하게 볼일만 보고 가는 엊그제 단골 같은 부류가 근심을 토로할라치면 내 일인 양 도와주고 싶어 안달인 깎새다.
- 샴푸를 바꿔 보는 건 어때요?
- 샴푸요?
- 이거 한번 써 봐요.
서랍장에서 주섬주섬 꺼낸 건 이용사중앙회와 독점 계약했다고 광고하는 샴푸 업체가 선보이는 탈모 예방 샴푸 샘플 3개였다. 부친 권유로 한방 재료로 만든 샴푸와 토닉을 싼값에 들여와 이문을 붙여 손님들한테 파는 중이다. 샘플은 제품에 관심을 보이는 손님한테는 미끼용으로, 구매한 손님한테는 덤으로 주려고 쟁여둔 것들이다.
- 샴푸 바꿨다고 머리카락 새로 날 리 없겠지만 덜 빠지거나 빠지는 속도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내가 써보니까 괜찮더라구.
공짜니까 일단 받긴 받는데 다른 꿍꿍이가 혹시 있나 깎새 눈치를 살피는 손님.
- 안쓰러워서 주는 거니 그냥 받으세요. 많이 못 줘서 미안하구만.
그러곤 살짝 뜸을 들였다. 본론을 꺼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쯤 되겠다.
- 샘플 써보고 괜찮음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재고는 넉넉하니까.
단골 위하는 깎새라고 고마워하던 표정에다 '그럼 그렇지' 빈정 상한 듯한 표정까지 겹쳐 뭐라 형언하기가 참 힘든 묘한 얼굴이 된 채 점방을 나가는 손님.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알아준댔다고 그대가 안쓰러워 건넨 샘플은 선심에서 우러난 것이니 폄훼하진 마시길. 때가 때인지라 목구멍이 포도청인 비수기에 가뭄에 단비 같은 4만 원짜리 샴푸 팔아먹을 탐심이 발동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애면글면 살아보겠다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되었음이니 너그럽게 이해하시길. 샘플 한 개로 머릴 두어 번 감을 수 있으니 요령껏 써보고 나쁘지 않겠다 싶으면 샘플 말고 본 제품을 꼭 구입해 주면 백골난망이로소이다. 5천 원 에누리는 단골만 누릴 수 있는 혜택임을 잊지 마시길.
샴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4만 원인 단가가 좀 센 편인데도 불구하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 간 사람이 있었다. 한 2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사고 파는 와중에 소동 아닌 소동이 벌어졌기로 그 상황을 글로 남긴 적이 있었다. 생각난 김에 되새김질하려다가 내일 글로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