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이야기 아직 안 끝났다

by 김대일

재작년 추석 시즌 이후로 무역상은 보지 못했지만 무역상 부인은 이듬해 봄까지 두어 번 깎새 점방을 찾았다. 외국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샴푸를 사려고 말이다. 한번 오면 두어 개씩 구입하니 매상이 올라 좋긴 한데 그녀가 왔다 가면 뒷맛이 영 개운찮았다. 뭐가 그리 미심쩍은지 "젊은 사람 장삿속이 너무한다"는 토씨 하나 안 바뀌는 멘트를 들를 적마다 씩둑거려 사람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라. 하여 그깟 삼푸 안 팔아도 좋으니 그날(2023년 5월 어느날)만은 함부로 입을 못 놀리게 확실히 단도리를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기에 이르렀다.

무역상이 처음 점방을 찾았던 2022년 9월경으로 돌아가 보자. 머리 피부가 민감해 염색하는 데 애를 먹는다기에 만칠천 원짜리 한방 염색약으로 염색을 해줬고, 두피 가려움증에 효과가 좋다는 샴푸에 관심을 가지길래 제품을 설명해줬더니 개당 삼만오천 원 하는 샴푸를 네 개씩이나 사는 무역상한테 왜 그리 많이 사느냐고 제지할 장사꾼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다. 그로부터 이틀 뒤, 부인을 대동해 다시 점방을 찾은 무역상이 저번에 산 거 5개 더 사겠대서 샴푸 5개를 건네줬는데 달랑 오만 원만 주길래 샴푸는 개당 삼만오천 원이라고 정정해줬다. 알쏭달쏭해하다가 제값 다 치르고 샴푸를 산 무역상은 제지하는 부인을 뿌리치고 휑하니 사라졌다. 5분이나 지났을까, 방금 산 샴푸 환불하겠하고 무역상 부인이 요청을 해 환불을 해줬다. 남편이 그제 발랐던 염색약하고 샴푸를 혼동했다는 환불 요청사유를 듣고 선선히 수긍했으면 쿨하잖아?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무역상 부인이 또 깎새 점방엘 찾아와 샴푸 2개를 다시 사겠다고 해서 팔았다. 그게 다였다.

근데 샴푸를 사러 들를 적마다 밑도 끝도 없이 장삿속 운운하니 깎새가 억울할 수밖에. 순진한 자기 남편을 꼬드겨 만칠천 원 하는 염색약을 삼만오천 원짜리 샴푸로 혼동시켜 비싼 제품으로 구매하게 잔꾀를 부린 적도, 부릴 까닭도 없다. 그럼에도 무역상 부인은 장삿속이 심하다는 둥 염장 지르는 소리를 내뱉고 나서야 샴푸를 사 간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깎새 짐짓 원통한 표정으로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장부를 꺼내 든다.

- 사모님, 작년 9월 남편 오셔서 구매한 내역이 여기에 다 적혀 있어요. 그래서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남편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남편 오신 그 이틀 뒤에 사모님까지 같이 오셔서 요랬다조랬다 한 것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요. 그건 사모님도 부인 못 하실 겁니다. 그런데도 들를 적마다 속을 들쑤시는 그 까닭을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대답이 궁하니까 샴푸나 얼른 달라면서 뻔히 아는 샴푸값을 재차 묻는다. 삼만오천 원이라고 하면 뭐가 그리 비싸냐고 또 트집을 잡는다.

-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를 사모님이 모르실 리 없잖아요. 받아오는 샴푸값이 오르면 파는 값을 올려야 마땅하지만 삼만오천 원에 마진 안 남기고 그냥 파는 사람 심정도 생각하셔야죠. 알 만한 분이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샴푸 샘플이나 넉넉하게 달라고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다 떨어져서 줄 게 없다고 했더니 샴푸값도 비싸, 단말기 없다고 카드로 계산도 못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시비로 끝장낼 판이었다. 이러다 오늘 일 내겠다 싶어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은 뒤 창고로 쓰는 탕비실로 들어간 깎새가 뭔가를 들고와서는 무역상 부인 앞에 들이밀었다.

- 샴푸 만드는 회사에서 나오는 헤어 테라피인데 가격만 보면 샴푸값 못지않습니다. 양도 많고요. 샴푸 자주 많이 팔아주시는 단골께 감사의 표시로다가 그냥 드리는 겁니다. 샘플은 다음에 챙겨드리겠고요.

다음번 와서도 장삿속 운운하면 그땐 정말 가만 안 두겠다고 작심했건만 무역상도 무역상 부인도 이후로 더는 점방을 찾지 않았다. 샴푸 이야기가 정말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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