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거

by 김대일

이 선생은 경기도에 살며 올해로 교직생활 25년째다. 부산 출신인 그가 임용시험에 합격한 이듬해인 1997년 2월에 3월 1일자로 개교할 경기도 한 고등학교로 부임 발령이 나자 난감했다. 갑작스런 발령에 살 집 구하는 게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이어서다. 학교 부근으로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주변 집값이 엄청 올라서 장교로 군 복무하면서 여투어 뒀던 돈만으로는 도저히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ROTC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동기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분간 그 집에서 빌붙기로 했다. 동기 집은 서울 신림동에 있었고 반지하층에 방은 2개였다. 학교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가면 1시간가량 걸렸다. 동기가 방 2개짜리 집을 구한 건 그의 여동생도 상경해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이었다. 오빠 친구라곤 해도 무턱대고 곁방살이하려 드는 남자가 얼마나 불편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았다. 그때야 앞뒤 재볼 여유가 없을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그 여동생이 느꼈을 부담,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함이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남매와 함께 동거를 시작한 이 선생은 동기와 한 방을 썼고 나머지 한 방을 여동생이 썼다. 그러던 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동기가 다니던 회사가​ 전역 장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취업처였으되 출근 시간은 빠르고 퇴근 시간은 늦는 워커홀릭 분위기가 팽배했다. 동기 출퇴근 시간이 교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어도 그게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 여동생이라고 해도 오빠 없는 집에 외간 남자와 멀뚱하게 저녁시간에 함께 있는 장면은 어딘가 껄쩍지근했다. 얹혀 사는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공교로운 분위기로 집안 공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이 선생, 꾀를 부렸다. 동기가 출근하는 아침 6시에 같이 나간다. 그러면 정시 출근보다 1시간이나 빨리 학교에 도착했다. 또 동기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2시간 늦게 학교를 나온다. 이 선생 입장에서야 고육지책이었지만 신입 교사가 1시간 일찍 출근해 2시간 늦게 퇴근하는 일상을 본 학교 관계자들은 얼마나 예뻤을까. 신참치고 애교심愛校心 충만한 물건 들어왔다고 좋아하건 말건 이 선생은 그제서야 집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지낼 수 있어서 안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엄청난 고난이 밀어닥쳤으니, 동기가 1주일씩이나 지방 출장을 간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 일을 어쩐다.

동기 없는 집에 들어갈 엄두가 전혀 나지 않는 이 선생, 그길로 보따리 챙겨서 동료 선생 집에서 1주일간 피신하기로 했다. 아 그러나, 신세 지기로 한 선생 집은 원룸인데다 그 선생 역시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집 문턱을 넘어서서야 알게 된 이 선생은 갈수록 태산, 엎친 데 덮친 격,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늑대, 내린 눈 위로 서리까지 덮이는 처지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교육자적 식견을 기르는 데 일조하게 된다. 자라나는 학생들아, 속담이나 고사성어 중에 틀린 말 하나 없더라. 너희들 앞에 선 선생님이 겪어봐서 아는데… 하면서 말이다. 좌우지간 일주일이라고는 하나 전보다 더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이 선생. 좁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동료 선생을 가운데 눕혀야 잠을 청할 수 있었으니 이 선생의 반듯하고 방정한 기질이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런 사람이었으면 터져도 여러 번 터졌을 복장이었을 게다.

그 해 5월 결혼을 앞두고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하면서 두 달가량 두 집을 오가며 이어지던 더부살이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벌써 사반세기나 지난 오래된 해프닝이지만 돌이켜보매 황망하던 그 당시에 기꺼이 호의를 베풀어 준 동기와 동료 선생이 정말 고맙다. 무엇보다 불청객에게 보여준 그 여동생들의 초인적인 인내야말로 이 선생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복된 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족- 요즘도 그럴까.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난이. 나도 이 선생만큼이나 초기 서울 생활 땐 주거 문제로 고초를 겪었다. 1997년 7월부터 2000년 4월 결혼하기 전까지 미아리 부근 선배집, 같은 부서 부산 출신 대리가 얻은 성남 언덕배기 전셋집, 평촌 막내고모집으로 더부살이를 전전했으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남의 귀한 자식 졸지에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키는 꼬라지가 역겨워서 난 여전히 서울이 징글맞도록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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