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처럼 지나가되 극적인 순간을 포착해 이를 '결정적 순간'이라고 했던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우연하지만 기똥찬 그 장면을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어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둔함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상담 창구가 주욱 늘어선 건물 내부, 나른하고 허기까지 지는 오후였다. 상담 창구를 잠시 벗어나 하이에나마냥 어슬렁거리는데 저쪽에서 한 직원이 두유 한 팩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내던진다.
"먹고 떨어지세요."
순간 얼음을 꽉꽉 채운 아이스박스 맨 밑바닥에서 꺼낸 사이다라도 들이켠 듯한 청량감이 확 몰려 온다. “이거라도 마시면서 허기를 눅이는 건 어떨까요?"나 “퇴근이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따위 너무 밋밋해 하나 마나 한 말을 주워섬겼다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자니 왠지 섭섭해서 툭 내뱉은 입말에다 두유 팩을 건넬 때 슬쩍 비친 장난기 어린 표정은 별책 부록으로 끼워 자칫 데면데면했을 법한 증여의 장면을 유쾌하게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