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by 김대일

나이를 먹을수록 떨어지는 건 기력만이 아니다. 머리카락 숭숭 빠지듯 떨어져 나가는 인연이 수두룩하다. 일 년 열두 달 가봐야 기별 한 번 없는 사이는 그냥 남남이다. 전화번호로만 박제되어 있는 이름까지 친구라고 일컫는다면 친구라는 낱말에 대한 대단한 모욕이다. 하여 스마트폰 속 냉담한 연락처일랑 불필요하게 용량이나 잡아 먹으니 당장 지워 버리는 게 낫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테지만 그런 상황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미 인연은 끊어졌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건조하다. '관계'란 낱말이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이라는 의미를 지녔음에도 전혀 쌍방향적이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 말로 돌아가, 인연이 끊어질락 말락한 기미를 감지한 한쪽이 먼저 개선해 보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한들 다른 한쪽이 그런 노력에 냉담하거나 무시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관계 회복에 왜 혼자서만 애걸복걸해야 하는지 빈정이 상하면 절연 가속도는 더 붙는다.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조차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갈라서는 판국에 친구라는 존재야 격조의 이랑이 깊게 파일수록 똥값이 되어 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하여 "사람은 평생에 한 친구면 충분하다. 둘은 많고 셋은 문제가 생긴다"(헨리 아담스)라는 아포리즘이야말로 뼈를 때리는 탁견이다.

단념은 빨라야 한다. 특히 교우 관계는 쾌도난마로 맺고 끊어야 신간이 편하다. 한때는 관계 단절이야말로 인생을 파탄내는 자충수라 벌벌 떨었을지언정 섬뜩하리만치 돌연한 변신이다. 그렇다고 아주 느닷없진 않다. 이른바 백안시, 도외시, 등한시 경시輕視 3종 세트를 상대방이 슬쩍슬쩍 드러내는 걸 점과 선을 배합한 모스부호를 읽듯 간파하는 능력이 경륜처럼 쌓이자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눈치만 늘었다. 단념은 필연적으로 고립을 초래하지만 우정이라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메우겠다고 남발하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말들의 상찬 앞에서 소화불량으로 내내 고생하기보다는 백번 낫다. 하여 멀찍이 떨어져 고독을 즐기기로 선택한 결정에 후회는 없다.

인간은 졸아도 혼자 졸고 죽어도 혼자 죽는다. 혼자서 혼자서.

작가의 이전글먹고 떨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