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대가리가 되기 싫으면

by 김대일

손님이 짧게 깎아 달라고 주문하면 손님 머리 모양이나 생김새를 대강 훑어보고 나서 짧은 듯 긴 듯 어중간하게 일단 깎은 뒤 의중을 살핀다. 경험상 손님 주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깎아재꼈다간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몰라서다. 하여 깎새는 이발에 관해서만은 현상유지에 방점을 둔 보수주의자이면서 손님 심사에 맞춰 요령껏 운신하는 기회주의자를 자처한다.

바리캉 전원 버튼을 끄고 이발 종료를 선언했을 때 손님이 잠잠하면 작업은 그대로 끝나는 것이고 행여 마뜩잖은 표정이 감지되거나 어깃장을 놓을 기세라면 그가 요구한 바 그대로 '짧게 깎는' 수정을 해주면 그만이다. 이것은 그간 숱한 손님을 겪으면서 터득한 깎새 생존술 중에서도 요체이다. 그렇다고 깎새가 독창적으로 깨친 이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이 바닥에서 바리캉깨나 휘두른다는 기술자라면 누구나 터득한 손님 대응술이니까 호들갑을 떨며 지적재산권 보호를 주장할 까닭은 없겠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체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

가끔 똑같은 말을 앞으로 얼마나 더 되풀이해야 자기 스타일을 알겠냐고 타박하는 단골한테는 살짝 미안하지만 부러 덜 깎는 짓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싶다.

"손님이 짧게 깎으랬다고 생각없이 밀었다간 나중에 무슨 원성을 살지 모릅니다. 좀 남겨 둬야 나중에 수정을 해도 하는 거지 깎은 머리털 도로 갖다 붙일 순 없는 노릇이라서."

구차해 보이는 변명이지만 혹시 모를 불찰을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데는 수긍하는 단골이 그저 고맙다. 게다가 그러는 게 어쩌면 손님을 우선으로 여기는 장사 수완일지 모른다고 치켜세우니 어깨 뽕이 가득 들어가는 깎새.

허나 치명적인 약점만은 보완될 기미가 안 보여서 언젠가는 깎새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 위험 요소로 상존한다. 점방 차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단골 손님 얼굴과 그의 머리 스타일을 외우는 데 애를 먹는 점은 분명 문제다. 입장 바꿔 "어떻게 깎아 드릴까요?"라고 머리 깎을 적마다 물어대면 단골이라는 프리미엄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건 점방 존립을 좌우하는 평판의 문제라 대단히 중차대하다. "저 깎새는 새대가리야!", 이후 벌어질 몰락을 상상하고 싶진 않다.

작가의 이전글혼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