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딴에는 장사에 이골이 났다느니 장사치 똥은 개도 안 처먹는다고 떠벌이지만 심기가 아주 불편해지면 기어이 본색을 드러내고 마는 깎새, 멀어도 한참 멀었다. 봉두난발을 해가지고 서너 달에 한 번 깎새 점방을 찾는 건 그보다 더한 행색을 한 치들을 봐와서 그렇다 치지만 자주빛으로 물을 들인 꼴에는 천불이 날 수밖에 없다. 컬러 물 들일 돈은 안 아깝고 5천 원 하는 커트 요금에 생돈 드는 기분이 드는지 거칠기로는 싸리비 저리 가라 할 머리털을 서너 달씩 기르고 와서는 짧은 상고머리로 깎아 달라고 하면 오늘로 장사 접는 한이 있어도 그 몰염치에 바리캉을 들이대 삭발로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깎새 주무기는 파나소닉 ER1511 바리캉이다. 가격은 15~16만 원 선인데 날만 따로 구입하면 4~5만 원 한다. 점방에 바리캉 4개를 비치해 두고 번갈아 쓰지만 하루에도 십수 명을 상대하다 보니 점점 닳을 수밖에 없다. 특히 안 감아 기름 번들거리는데다 떡이 진 머리, 철사를 연상시키는 빳빳한 직모, 그 직모가 곱슬기를 품은 머리를 아득바득 깎다 보면 바리캉 날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난다. 그런 불한당 같은 머리털에 자꾸 치이다 보니 제 명에 못 살고 금세 고물이 되고 만다. 아직 고객층이 공고화되지 않아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만 비명 지르는 바리캉을 볼 적마다 수족이 떨어져 나가는 듯이 고통스러운 깎새로서는 몰지각한 손님을 하나씩 하나씩 척결해 나가야겠다고 모질게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세련되게 척결할지 그 방식을 고민할 뿐.
- 머리숱은 엄청난데 머리결까지 거칠면 참 곤란합니다.
- ···.
- 별 거 아닐 것 같아도 하나에 4~5만 원씩 하는 바리캉 날입니다. 5천 원짜리 커트해서 바리캉 날만 사다 보면 남는 게 없다는 거죠.
- ···.
- 선생님 머리처럼 숱은 무진장인데 푸석푸석하기까지 하면 남아날 날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들리시죠? 날 안 나가서 끽끽거리는 소리를.
- ···.
- 다음번에 오시면 추가요금을 받을까 합니다. 서운하다 마시고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다음부터 안 보기로 하자. 여기 말고 딴 데 가서도 썩 좋은 소린 못 듣겠지만, 아무튼 우리 악연은 오늘로 빠이빠이하기로 하자.)
- 그래요.
추가요금을 내고서라도 여기 아니면 아니 되겠다는 손님을 돌려 보낼 강심장은 아니다. 다행히 더러워서 다시는 오나 봐라 강다짐했는지 이후로 발길을 뚝 끊었다. 최선의 시나리오였던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