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중개업으로 먹고 산다는 손님은 머리를 자주 깎는 편이 아니다. 헤실헤실한 머리털을 두어 달씩 길러 오면 볼품이랄 게 없지만 자르고 다듬으면 금세 딴사람이 된 양 말끔해진다. 보기와는 달리 중후한 목청을 장착한 손님이라 들어올 때와는 판이해진 말쑥한 맵시로 조용히 물러가면 로맨스그레이로 더할 나위 없겠으나 묵직한 목소리로 주책없이 떠들다 보면 제 살 깎아 먹기 십상이다.
- 차린 지 3년 됐다고? 이발소는 진득하게 자리 지키면 돈 된다니까.
- 요금 적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니야. 푼돈 모아 건물 산 사람도 있어.
- 이 건물 시세가 얼마쯤 돼 보이우? 몇 년 모아 아예 사 버리지 뭐. 대출 받아 내는 이자 월세인 셈 치고.
떠벌리는 레퍼토리에 창의성이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지만 올 적마다 같은 말을 되뇌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깎새 전에 근동에서 남성 커트점을 낸 여자가 서너 해 동안 돈을 갈고리질로 긁어 모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깎새처럼 커트 요금 오천 원으로 시작했다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요금을 야금야금 올렸는데도 끊이질 않았다나. 얼마나 번창했으면 몰려드는 손님들 받아내느라 숟가락 제때 든 적이 없다고 전해지지만 여자 원장이 끼니를 때우는지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지 온종일 그녀 옆에 붙어 있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으니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
다만 근동에서 장사한 지 몇 해 안 지나 점방을 싹 정리한 뒤 자기가 사는 동네 3층짜리 건물을 사서 1층에다 커트점을 새로 열었다는 점은 여자 원장의 골수 단골이라고 자처하는 손님에 의해서 사실로 밝혀졌다. 아쉬운 마음에 수소문해 새로 연 점방까지 친히 발걸음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점심시간과 겹쳤다나. 점방 문에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푯말을 붙여 놓고 문을 꽁꽁 잠궈 놨길래 먼 걸음한 게 아쉬워서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2층 창문이 열리더니 여자 원장이 빼곰히 얼굴 내밀고선 밥은 제때 먹어야겠으니 기다리려면 기다리고 아니면 말라고 해서 되돌아갔단다. 서운한 마음부터 들었지만 벌긴 제법 벌었구나 자기 일인 양 뿌듯했다나.
여자 원장 시절 단골이든 부동산 중개업으로 먹고 사는 손님이든 싼 요금을 내걸고 커트점을 열어 건물까지 산 성공 사례를 목도한 이들 열이면 열 예전 여자 원장을 들먹이면서 돈 많이 벌어 성공하라고 늘 푼수 없이 떠들어 댄다. 이상한 건 좋은 뜻인 줄 뻔히 알면서도 괜히 배알이 꼴려 귓등으로도 안 들으려는 깎새다. 아마도 십수 년 전 능력도 없으면서 탐욕을 일삼다 쪽박을 찼던 부끄러움이 새삼 겹쳐서일 게고, 그저 마누라한테 매달 이백오십만 원을 '따박따박' 건네 지속가능한 경제력을 가장이란 자가 이제 겨우 갖췄음을 승인받아 지난 과오를 희석시키는 것이야말로 당면한 최대 과제라서 허황된 헛꿈이나 실없이 던지는 치들과 상종하기란 죽기 보다 싫은 결벽증에서 비롯되어서일 게다.
갈고리질로 돈을 긁어 모을 수완이 전혀 없다는 점을 절감하는 깎새는 돈을 많이 번다거나 그 번 돈으로 건물을 사는 욕망 따윈 부질없다. 기회 닿을 때마다 강조하건대 십수 년 전 빚이라는 바윗덩어리에 깔려 질식사 직전까지 갔던 처참한 과거가 탐심을 차단시킨 결과이겠다. 그저 본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번 돈으로 분수에 맞게 사는 걸 지향하기로 했으니 덕담이라고 건네지만 황금만능주의만큼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