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 인사

by 김대일

깎새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배후엔 갈림길이 있다. 내려가면 청사포, 올라가면 달맞이언덕인 갈림길. 지대가 높은 거기서 맞는 일출이 여느 명소 못지않아서 새해 첫날이면 해맞이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연례행사가 연출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해 첫날만 되었다 하면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새벽 댓바람부터 잠 덜 깬 딸아이들과 잔뜩 옹송그린 채 갈림길 언덕으로 향하곤 했었지만 개업한 이후로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새해 첫날이 휴무일 화요일이 아닌 다음에야 새해 일출 보기는 앞으로도 주욱 요원하겠다. 어김없이 내일의 태양이 뜨듯이 깎새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점방 문만은 열어야 하니까.

새해 첫날 아침 가족들과 느긋하게 떡국 곁들인 아침을 즐기는 장면은 훈훈하기 그지없겠으나 새벽 출근길 한산하기 그지없는 광안대교를 건너는 찻간에서 운전대를 괜스레 꽉 붙들고 앉았는 깎새는 꼭 최전선에 곧 투입될 병사처럼 혼자 비장하다. 전선은 전선이지. 생업 전선. 그깟 하루치 매상 몇 푼 된다고 새해 첫날부터 수선이냐 이죽거릴 치들이 없지 않겠다. 떡국 파티 오붓하게 벌일 시간에 남의 머리 깎아 주고 염색 바르는 게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니니깐. 허나 할 만하니까 견디는 거다. 요컨대 단란함은 언제든 누릴 대가이니 지금은 치열한 편이 깎새에게 더 요긴하다는 변명이면 수긍할 만한가.

새해 인사 겸 당신을 향해 끼적이는 이 글의 골자는 별 거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완고하게 사는 삶을 신념의 문제라고 우긴다면야 왜 그렇게 사냐며 대들 수는 없겠으나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보이니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든다. 그러니 유연해지자. 슬프다고 해서 줄창 슬프기만 해선 아니 되겠지만 행복하다 넋 놓다가 뒤통수 된통 얻어맞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하자. 트랜디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아하고 찬란한 배우를 동경하지만 그 배우가 나일 순 없으니 과감하게 허상을 집어 던지자. 덧없는 행복을 염원해 불행해지기보다는 그저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일상을 이어가자.

당신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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