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그러면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의 삶을 평가할 때 적용되어야 할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좋은 이야기일까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도 큰 주제라서 오늘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등장인물이 필요하겠지요.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115쪽)
삶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좋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는 좋은 등장인물로 구축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목, 충분히 설득적이다. 살다 보면 사라지는 것들을 무수히 목격하고 이렇게 씩둑거리는 깎새 또한 언젠가는 한 줄기 바람 되어 사라질 게 자명하다. memento mori. 그럼에도 게걸스럽게 인생의 맥락을 이어가려고 애쓰는 중이고 그러자면 오래도록 이어져야 할 양식, 즉 전통이 필수적임을 절감한다.
많은 것들이 덧없이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연애 지속 기간도 해가 다르게 짧아져가는 이 덧없는 세상에서, 어떤 것을 부여잡고 지켜나가서 하나의 전통으로 지속시켰다는 것. 역시 멋지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같은 책, 82쪽)
중요한 점은 지구를 지키는 슈퍼맨이든 슈퍼맨 할애비가 와도 전통을 독자적으로 창출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호스트를 자처하던 녀석이 황망하게 하직하는 바람에 퇴락한 과거지사로 전락한 대학 과동기 모임. 날 정해 놓고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서 게중에 누군가가 얼굴 까먹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그길로 날을 정해 만나던 시절은 여럿이 함께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켜켜이 쌓아올리던 찬란한 한때였다. 약속은 창대했겠으나 모여본들 기껏해야 대폿집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다가 막차가 끊기겠다 싶음 부랴부랴 귀가를 서두르는 그야말로 별거 아닌 모임이었음에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전망에서 '어떤 것을 부여잡고 지켜나가서 하나의 전통으로 지속시'키는 주역으로서 뿌듯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 사이에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빈부의 격차가 도드라지게 벌어짐으로써 공고했던 유대감에 균열이 감지되긴 했으나 좋은 관계만은 오래도록 유지해야 한다는 모임의 지향점은 결코 바래지 않아서 구성원 각자는 서로에게 '좋은 등장인물' 역할에 충실했었음이라.
그로부터 시간이 더 흘러 전통과 좋은 등장인물이 사라진 깎새 주변은 박토로 변했고 맥락이 끊긴 채 조각조각 단절된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무상함은 그 체류에 기한이 없다. 새해만 되었다 하면 부쩍 수취인을 정하지 않은 연하장만 만지작거리는 깎새가 한심하면서도 안타까워 보이는 까닭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