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가기

by 김대일

이태 전에 소리소문없이 탈퇴한 단톡방에서 공지가 다시 날아온 건 지난 연말이었다. 신년에 가질 모임 일자를 정하고 참석 여부를 확인할 겸 새로 초대를 한 모양이었다. 깎새는 망설이지 않고 '조용히 나가기' 버튼을 또 눌렀다. 깎새가 나온 대학교 ROTC 동기, 선후배로만 50명쯤 북적이는 단톡방이다.

하루도 안 빠지고 등산을 즐기는 이는 직접 찍은 아침 풍경 사진 밑에다 감성적인 글줄을 덤으로 게시하는 게 일상이었고, 엄근진을 내던진 고등학교 교장은 학교 행사 때마다 깜짝 분장을 하고서 찍은 사진을 올려 꼰대가 아님을 인정받으려 애썼다. 이들뿐 아니라 50이란 나이줄을 두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단톡방 중년남들은 일상이 무료해지는 건 죽기보다 싫은지 틈만 나면 혼자든 끼리끼리든 필사적으로 즐거워지려 애썼다. 놀고 즐기는 잡사라면 그게 뭐든 시시콜콜하게 인증샷을 곁들인 활자를 일단 올리고 본다. 이벤트를 함께하지 못한 이들이 부럽고 아쉬운 티를 댓글로 호응하니 짝짜꿍이 기가 막히다. 그들은 그렇게 돈독한 유대를 과시하려고 말풍선을 남발했다.

나이 먹을수록 사람이 가장 아쉽대서, 혹시 죽을 만큼 외롭다고 호소하면 두말없이 달려올 누군가를 여망하는 이기적인 속셈으로 단톡방에 머물렀었다. 그런 심정을 일기장에다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를 좋아해 주건 안면만 트고 데면데면하게 지내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망극한 나이가 됐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한적한 공원 벤치에 퍼질러 앉아서 나도 모르게 신세 한탄을 할 때, 이런 돌연한 감정 기복을 가족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내지 못하는 내 주변머리가 한탄스러울 그 때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하다못해 휴대폰에다 대고 넋두리를 늘어놓을 만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것만큼 처량하고 비참한 것도 없다. 그러니 주말마다 모여서 등산을 가든 골프를 치든 뒷풀이로 막걸리, 소주, 맥주, 양주를 동이째 섞어 마시든 그 모든 야단법석을 최신형 휴대폰 카메라 앵글에다 담은 인증샷을 주야로 올리든 나야 새치머리 염색약을 바르느라 손목이 나갈 지경이고 염색한 머리 감겨 주느라 허리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단톡방을 절대 나가지 못하겠다. 설령 그렇게라도 해서 외롭지 않으려는 게 정답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지만, 소모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말들의 잔해를 뒤지는 자신이 꼭 썩은 사체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하이에나를 닮았다고 경멸스러워할 무렵 깎새는 비로소 각성했다. 저 안드로메다 외계 행성어같은 말풍선에 기대 유대라는 돼먹잖은 허상을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결국 큰맘 먹고 택한 건 자기기만 대신 외로움이었다.

점점 가탈스러워지는 성질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는데다 설령 만난다손 우정의 맹아가 싹틀 정서적 자양분을 꾸준하게 공급할 여력이 있기나 한 건지 회의적이다. 우정이라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메우겠다며 남발하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언어들 앞에서 소화불량으로 내내 고생할 바에야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외롭게 즐기는 편이 차라리 속 편하지 않을까. 아니면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구공 윌슨처럼 묵묵한 대화 상대나 찾아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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