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철학

by 김대일

야만인을 의미하는 '바바리안(barbarian)'이 그리스말을 할 줄 몰라 말을 더듬으면서 '바르바르'라고 옹알거리는 종족을 일컫는 '바르바로이(βάρβαροι/barbaroi)'란 그리스말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이(팟캐스트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진행자 허진모)는 문명이 발달한 사회란 언어가 발달한 사회이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세분화되고 범주화된, 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어휘들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포진되어 있는 사회라고도 강조했다. 그 어휘들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말이다(동사적 사고 혹은 명사적 사고).

영화 <황산벌>(2003)에서 지금은 대세배우로 자리매김한 김병철이 신라 첩자로 분해 백제군 진지로 침투한 뒤 계백이 한 말을 모조리 듣고 와서는 김유신을 위시한 신라군 수뇌부 앞에서 그대로 보고하는 장면이 있다. 첩자 말을 다 들은 신라 암호 해독관은 계백이 한 말을 못 풀어 쩔쩔맨다. 계백 말은 이러했다.

"나가 출정 전에 갑옷에 대해 거시기헌 거 기억들 하고 있것제? 까먹지들 말고 병사들에게 거시기 잘 허라고 단단히들 일러."

"긍게 이번 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 마디로 머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헌다."

암호 해독만 20년째라는 해독관이 죽어도 모르겠다고 억울해할 만큼 고난도 암호처럼 들리는 '거시기'와 '머시기'는 어휘 하나로 모든 의미를 퉁치는 일종의 통칭어統稱語인 셈이라 문명인으로서는 지양해야 할 바다. 하지만 노자가 썼다는 『도덕경』에는 이와 대척되는 내용이 엿보인다.


‘거시기’란 뭔가 특칭할 수 없는 것에 붙이는 전라도 사투리인데, 노자 식으로 번역하면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 즉 무명(無名)이다. 『도덕경』에서 무명은 진리의 표상이다. “천지자연이 모두 이 무명에서 시작한다”(無名, 天地之始. 제1장)라거나, “진리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진리가 깨어질 때에야 이름이 생겨난다.”(제32장)는 주장에서 그 뜻이 명료하다.

영화 속에서 신라군은 백제군의 암호로 오해한 이 ‘거시기’의 정체를 찾아서 온갖 해프닝을 벌인다. <황산벌>이 코믹영화로 여겨지는 부분이 여기다. 하지만 이 대목은 참된 진실은 말로 표현되지 않으며, 그 형언할 수 없는 무명의 세계를 개념, 즉 유명(有名)으로 포박하려는 시도는 허망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장치로 기능한다.(배병삼, <고전 다시읽기-덕장의 요건은 ‘쓰레받기 리더십'>, 한겨레, 2006.03.30.에서)


'거시기'라는 이름없음이 이름으로 상징되는 욕망에의 집착과 그로부터의 각성, 그리고 탈속의 행로를 그린 철학적 의미라는 주장이다.

민주공화정 공통 규범이 파괴되는 초현실주의적 현실에 직면하자 세분화하고 범주화해서 정확하게만 대응하는 게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지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각 잡고 사는 인생이 되레 각다분해졌다면 우리가 혹시 잘 못 산 건 아닌지. 용산 이무기를 처단하고 내란을 종결 지은 뒤 형해화된 세상의 틀을 메울 그 무엇을 꼭 찾아 나서야 한다.


전라도 사람들이 자주 쓰는 '거시기'는 상황을 얼렁뚱땅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애매모호한 표현처럼 오해되기 십상이지만, '거시기'만큼 공동체성이 드러나는 말도 드물다.

"어이! 거시기가 오늘 거시기 흔단디, 나가 오늘 쪼깨 거시기 흔께, 자네가 먼저 거시기 잔 해주소. 나가 언능 거시기 해놓고 시간 나문 거시기 흘랑께. 그러만 거시기 흐소."

친구의 애경사를 두고 바빠서 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신 부조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어떤 일이나 상황, 정서를 미리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거시기'다. '거시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라도말의 리듬과 유희가 그만이다." (황풍년,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행성B, 67~68쪽)


'거시기'가 해답의 하나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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