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깎새에 지나지 않는다

by 김대일

깎새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건 직업이 깎새이다 보니 그렇다. 만약 깎새가 소설이라는 걸 써 볼 요량이면 직업은 깎새인 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이발소가 뒷배경을 장식할 게 틀림없다. 그런 날이 언제가 될지 난망하지만 때가 무르익어 일필휘지할 깜냥을 미리 장착시켜 보겠답시고 깎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따위를 줄기차게 찾아 읽긴 한다. 콜롬비아 작가 에르난도 테예스가 쓴 「단지 비누 거품일 뿐」 은 숨막히는 서스펜스와 극적인 반전이 압권인 단편소설로 지금껏 읽은 깎새가 주인공인 소설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소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날 토레스란 자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와 면도를 해달라고 했다. 토레스는 저항군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인간백정이다. 이발사는 저항군을 지지하는 숨은 동조자다. 기회만 닿는다면 토레스란 놈을 죽이고 싶었는데 제 발로 사지에 들어온 놈이다. 손에 들린 날 선 면도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놈의 목을 그어버리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하지만 이발사는 갈등한다. 비밀스런 저항군 이전에 엄연히 이발사다. 말끔하게 면도와 이발을 해주는 게 이발사로서의 도리이자 양심이다.

'그래,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면도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일을 해내는 중이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비누 거품, 그것이면 그만이다. 당신은 처형의 집행자이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이발사에 지나지 않는다.'

면도가 끝나고 토레스가 돈을 지불한 후 문을 나서려다 이발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 얘기로는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그러더군. 그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명심하라구."

지금이야 서로 짓까부는 사이로 발전(?)했다지만 처음 등장은 테예스 소설 속 토레스와 비교해 손색이 없을 만큼 꽤나 살벌했던 손님이 있다. 그는 이른바 닭벼슬 머리로 불리는 모히칸 스타일을 고수한다.

<1박2일> 딘딘만 한 체구라도 골격 다부지고 특히 옆으로 째진 눈매가 매섭기 짝이 없는 자가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역이 주로 하고 다니는 헤어스타일을 주문하면 일단 섬뜩하다. 말투 공손하고 몸가짐 반듯한 반전 매력이 겉으로 드러난 인상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다간 큰코다친다 새삼 각성하면서도 하늘을 활공하다가 급강하해 길 잃은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금류같은 살기 돋는 아우라 뿜어질 때가 아주 없진 않아 긴장의 끈을 늦출 수는 없었다. 이를테면 그가 데려온 여러 형님 중에 한 명이 머리를 깎다 말고 실없는 소리를 씩둑거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자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꼭 맞은편에서 오던 행인과 우연히 어깨를 맞부딪치자 잡아먹을 듯이 꼬나보는 조폭처럼 말이다. 허나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화해지긴 했다.

손님과 살가워지기 전이었다. 새끼 치듯 행님들을 데리고 와 깎쌔 매출 증대에 이바지해준 게 고마워서 까불까불 감사를 전했더니 "저번에 저하고 같이 왔던 행님 기억하시죠?" 대뜸 되묻는다. 기억난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뜻밖이었다.

"지금은 은퇴하신 칠성입니다."

"혹시 내가 아는 그 칠성파요?"

"예."

그때서야 알았다. 데리고 온 이들을 부르는 행님이라는 호칭이 영화 속 어깨들이 애타게 부르는 행님처럼 어쩜 그리도 귀에 착착 감기는지 말이다.

"(만만하던 이전과는 달리 고분고분해진 말투로)그럼 선생님도?"

"한때 몸을 담았지만 지금은 열심히 딴일하고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알긴 알지. 건설 폐자재 수거 일을 하며 월급 따박따박 받으며 사는 중이라고 일전에 밝힌 걸 똑똑히 기억하지. 하지만 주먹을 쥐면 그 의미를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문양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시퍼런 문신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박힌 게 예사롭지 않자 끝내 오금이 저려 오고 말았다. 그러자 손님 정수리에 닭벼슬처럼 남겨 놓은 머리카락이 행여 잘못되어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을지 온 신경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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