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때부터 깎새는 자동적으로 경계 모드로 돌입한다. 간혹 작업에 열중인 깎새 뒤에다 대고 남편 스타일을 가지고 콩팔칠팔하는 아내 간섭에 대비해서다. 이를테면 이발의자에 앉은 남편은 말이 없는데 아내가 불쑥 상고머리로 깎아 달라고 한다. 상고머리란 앞머리만 약간 길게 놓아 두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짧게 치켜 올려 깎고 정수리 부분은 편평하게 다듬는 단정한 스타일을 이른다. 깎새는 주문 받잡고 열나게 깎아재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내란 자가 깎새 옆에 득달같이 다가와서 남편 뒤통수 머리카락을 부여 잡고는,
"사장님! 제가 상고머리로 깎아 달랬지 죄다 깎으면 어떻게 해요. 윗머리는 왜 이리 건드려 놔서는."
귀를 의심하는 깎새. 분명히 상고머리로 깎아 달래서 그리 깎는 중인데 왜 상고머리로 안 깎냐고 하면 깎새보고 어떻게 하라는 소린지.
"사모님, 이게 상고머립니다. 윗머리는 놔두고 밑머리만 바짝 깎으면 그건 상고머리가 아니고 투블럭이고요."
보다 못한 남편이 "맞아요" 깎새를 두둔하면서 일단락이 되긴 했지만 깎새는 이미 김이 샜고 빈정까지 상한 뒤다. 상고머리와 투블럭을 착각한 게 분명한데 헤어 스타일 명칭이 무얼 의미하는 것쯤 숙지하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해야 참견도 먹히는 법이다. 흐름은 흐름대로 끊어 놓고 작업하는 깎새 심기까지 상하게 만들어 좋을 게 전혀 없다.
더한 예도 있다. 꼭 범죄 현장을 목격하듯 작업 과정을 매섭게 꼬나보는 여자를 앞거울을 통해 발견하면 공포 그 자체다. 깎새가 행여 직무유기의 덤터기를 제 분신에게 뒤집어 씌울까봐 눈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모자라 "저번에는 안 그러더니 오늘은 왜 이 모양으로 깎으세요?" 대들듯이 깎새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으면 심장이 오그라들고 가만하던 양손엔 마른땀으로 젖는다. 급기야 내가 이러려고 깎새 짓을 하는 건가 자괴감마저 들고 만다.
성악설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남녀가 팔짱 끼고 점방에 입장하면 해코지 당하지 않을까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이유이다. 깎새가 취득한 국가 자격증은 (미용사가 아닌)이용사이고 남자와 여자 헤어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그러니 남성 커트점에 와서 콩팔칠팔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 아니라 깎새 전문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