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

by 김대일

나이 든 손님은 다루기 편하고 젊은 축이라서 까탈스럽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머리카락이 커트보로 우수수 떨어진다 싶음 난리법석을 떠는 장발을 한 손님은 낼모레면 아흔을 바라보는 상노인이고 커트 스타일을 전적으로 깎새한테 맡긴 채 이발의자에 앉자마자 두 눈을 질끔 감고 숙면 모드에 들어가는 이는 작년 말에 제대해 복학을 앞둔 청년이니까. 하여 나이 고하로 손님을 예단해 일반화하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에 걸쳐 겪은 다양한 손님들을 복기해 보건대 '대개' 30~40대 손님이 확실히 다른 나이대 손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긴 하다. 왜 그런지 깎새가 나름대로 분석한 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존심이 세다. 아직 젊다는 자의식이 강해 깔롱지기는 걸 좋아해서 헤어, 패션에 예민하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에서 살짝만 어긋나도 분을 못 참고 마구 쏘아대는 치가 없지 않다. 거기엔 아마도 공급가액이 턱없이 싸 기술도 허접할 게 뻔하다는 '싼 게 비지떡' 선입견으로 공급자를 깔보는 의도가 깔려 있음이라. 그런 치를 만나면 깎새는 쓴웃음만 난다. 값싼 데를 찾은 자신도 값싼 놈인 줄 모르고 마구발방하는 꼴이라서. 인생도처유상수라고 했다. 도처에 고수는 숨어 있기 마련이고 싸다고 품질이 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30~40대 손님들 대개는 자기 스타일에 무척 공을 들이지만 개뿔도 없으면서 젠체만 일삼는 몰상식이 게 중엔 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대동한, 많이 들어봤자 40대 중반인 남자는 헬스클럽에서 담백질 보충제깨나 들이켠 모양인지 떡대가 다부졌다. 아들을 데리고 왔지만 자기만 깎겠다면서 의자에 앉은 남자는 살짝 골라 달라는 주문을 했다. 남자 머리는 반투블럭 스타일이었다. 속머리만 바짝 깎고 윗머리는 늘어진 버들가지인 양 고대로 냅두는 스타일을 투블럭이라고 한다면 옆머리는 투블럭인데 뒷머리는 상고로 깎는 모양새를 변형된 투블럭, 이른바 반투블럭이다. 속머리를 얼마나 짧게 깎느냐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 바짝 밀고 싶으면 3밀리짜리, 좀 덜 밀었음 하면 6밀리짜리 덧날을 쓰는 게 통상적이다. 남자는 9밀리짜리로 깎아 달랬다. 9밀리면 티가 별로 안 날지 모른다는 귀띔을 해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손님 덩치에 압도 당한 나머지 괜한 오지랖에 좋은 소리 못 들을 것 같아서.

남자 머리는 애시당초 단정한 편이었다. 이발한 지 끽해야 한 주쯤 지났을까? 그런 머리에다 대고 9밀리 덧날을 댔으니 이발을 했는지 이발하러 가서 머리만 감고 나왔는지 표가 안 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작업 속도도 일사천리였고. 너무 빨리 끝내는 게 찝찝해 헛가위질하는 꼼수라도 부릴까 고민했지만 관뒀다. 대목 타니 속도 덩달아 타들어가서 그런가 만사가 귀찮아져서.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커트보를 거두자마자 손님이 따지듯 "이게 다한 거예요?" 물었다. "9밀리로 깎아 표가 잘 안나서 그렇지 이발은 다했습니다" 했더니 거울 앞으로 들이민 얼굴선이 험악해졌다.

머리를 감고 난 남자가 뒷거울을 달라고 했다. 깎새는 '니 수작을 모를 줄 아나'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거울을 건넸지만 점방 안은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옆머리는 그렇다 치고 보이지 않는 뒷머리 상태를 거울로 확인해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면 그걸 트집 잡아 엄부럭이나 실컷 부릴 심산이었겠지. 하지만 여의치가 않았는지 애꿎은 거울만 깎새한테 내던지듯 건넸다. 그러고는 요금을 계좌로 이체한 뒤 휙 나가 버렸다. 그런 아비가 면구스러웠는지 되레 아들이 깎새한테 허리를 90도로 꺾어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고는 뒤따라 나갔다. 손님이 계좌이체로 요금을 지불할 경우 깎새가 입금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상례다. 아니면 송금한 내역 화면을 직접 들이밀든지.

개뿔도 없으면서 젠체만 하는 몰상식. 깎새가 없는 말을 지어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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