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서면역은 명실공히 부산의 중심역이다. 오고가는 인파들로 늘 붐빈다. 1호선 개찰구를 나와 범내골역 방향으로는 대연지하상가(대연몰)가, 반대인 부전역 방향으로는 부전지하상가(부전몰)가 길게 연결되어 있다. 이용학원이 서면역과 부전역 사이에 있어서 지하철로 가면 서면역에 내려 꼭 부전몰 입구 자동문을 지나가야 한다. 통근하듯이 1년 넘게 거길 오가는 동안 나는 묘한 이질감을 자주 느낀다.
같은 지하상가라도 대연몰과 부전몰은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대연몰은 젊은층을 대상으로 힙한 패션, 화장품, 악세서리 가게들이 주를 이룬다. 부전몰은 지상에 부전시장이라는 아마 부산에서 제일 크고 복잡할 재래시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거길 찾는 중장년층을 공략하려는지 젊은 취향과는 거리가 먼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선물할 법한 옷들이 진열되어 있거나 간단한 조작으로 트로트 수백, 수천 곡이 무한반복 재생되는 기계(이걸 라디오라고 해야 할지, MP3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를 좌판에 벌여 놓은 가게도 있다. 도무지 젊은이들하고는 무관한 신발, 가방, 가발 따위 잡화들로만 진열된 점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부전몰은 왠지 퇴락한 양반집 툇마루를 닮았다.
그래서일까. 부전몰에서 서면역으로든, 서면역에서 부전몰로 향하든 오가는 행인들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성큼성큼, 살랑살랑 걸어오고 걸어가는 청춘남녀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 공간에서 그들은 비중이 눈곱만큼도 없는 엑스트라 1,2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수묵화에 울긋불긋한 물감을 떨어뜨린 모양새라고 하면 표현이 과할까. 그렇게 그들은 불순하고 공간은 로맨스그레이를 추앙하듯 더 단호해진다. 부전몰로 들어서는 자동문이 스르륵 열리면 마치 시간을 왕창 잡아먹는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젊지도 그렇다고 현저하게 늙지도 않은 나는 노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계인이라는 자각에 아주 잠시지만 현기증이 인다. 젊은이들로 복작대는 대연몰을 지날 때 어쩔 수 없이 드는 소외감처럼 부전몰 늙음의 세계에 들어선 이상 어떻게든 영역 속으로 합류해야 하는데도 나는 그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만남의 장소 벤치에서 무료함에 지쳐 초점마저 잃어버린 시선을 닮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그 무료함을 달래려고 부전몰로 발걸음을 옮기지 말란 법이 없음이 서글퍼지는, 부전몰 자동문 앞에 설 때마다 인생의 이율배반성에 직면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길이 학교 등교길인 양 익숙한데도 불구하고 묘한 이질감을 떨쳐 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학원 건물로 향하는 부전몰 출구를 나와 지상으로 올라간다. 부전시장은 인파들로 득시글거린다.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 속 나는 여전히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감으로 방향타를 잃을 뻔한다. 다행히 건물 입구를 찾아 얼른 뛰어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풍경을 느끼는 나는 언제까지 이방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