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배우들

by 김대일

일세를 풍미하던 화용월태가 세월의 더께로 시나브로 그 윤기가 바래지고 몸통에서 곁가지로 전락하는 인생무상에 낙심하지만,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만이 배우의 길이 아니라는 실존적 각성에 마침내 이르고서는 단선적 지문(地文)으로 데생만 했을 뿐인 대본 속 인물에 펄떡거리는 생생한 리얼리티를 덧씌우는 개가를 올리는 중년 여배우에게서 포정해우庖丁解牛의 도를 엿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거울 앞에 선’ 중년만이 뿜어낼 수 있는 중후한 아름다움은 은막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장삼이사들의 보통 삶 속으로 파고들어 녹아듦으로써 빛을 발한다. 명멸한 배우들 중에 특히 고故 김영애가 그 전형이라고 나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영애가 거쳐간 숱한 작품들 중에 가장 역작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변호인》이란 영화를 꼽겠다.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처참하게 짓밟힌 대학생의 모친이자 평범한 국밥집 주인 순애로 분해 여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줬던 화려하고 우아한 인물과는 판이한 여염집 아줌마로 완벽하게 화한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가 송우석(송강호 분)에게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 하던 대사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심금을 울린다. 그래서일까. 영도 흰여울마을 흰여울길에 서서 바다를 바라볼 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레테의 강을 건넌 옛 애인을 그리워하듯 눈시울이 붉어진다(김영애는 부산 영도 출신이다).

고인이 된 연애인에 관한 영상이 느닷없이 유투브에 떴다. 무슨 조화로 유투브 알고리즘이 연예인의 죽음과 나를 연결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무심코 클릭한 영상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미지를 새삼 떠올렸다. 흘러간 드라마만 종일 틀어주는 TV 채널에서의 이미지, 특히 전원일기 속 노마 엄마로 분한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듯 위태롭고 애처로워 보였다. 결국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으로 그녀의 극중 배역은 끝나지만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그녀의 얼굴에 서린 우수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괴롭혔다. 2017년 11월 27일, 사망한 지 2주 만에 발견된 그녀는 고독사였다.

마지막까지 불꽃 연기를 발휘하다 사위어 든 김영애와 사망 전까지 작품 활동이 뜸해 경제 사정이 좋지 못했고 데리고 살던 강아지 말고는 연고도 없었다는 이미지의 죽음은 분명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내게 그들의 부재는 똑같은 비통함으로 다가온다. 아니 애틋하게 연모했으나 하늘의 별이 되고 만 내가 아는 모든 중년 여배우들을 애도한다. 나이듦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미덕으로 작용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전과는 또 다른 변모로 나를 들뜨게 했을 텐데 그게 너무 애석해서.

김영애, 이미지, 전미선, 윤소정….

진심으로 바란다. 살아 있는 이들이여, 제발 만수를 누리며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오래오래 왕성하게 종횡무진하시길.

유투브란 몹쓸 녀석 때문에 감정이 울컥해졌다. 자주 봐서 썩 좋을 게 없는 요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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