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주문은 매번 똑같다. 한쪽이 눈썹 밑에까지 내려오는 언밸런스한 앞머리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고, 옆머리는 회를 뜨듯이 뾰족하게 처리하는 샤기컷을 연상시키게 살짝 걷어낸다는 기분으로 숱가위로만 작업해야 하며, 뒷머리는 안 보이니까 깎새가 실력껏 매만지라는 것. 단골 목욕탕 늙은 이발사와 눈이 마주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맡길 때를 제외하고 깎새가 개업한 이래 보름 주기로 점방을 찾아 단골 of 단골로 등극한 지 오래다.
하지만 세상은 밝은 면이 있으면 반대로 어두운 면도 있는 법. 등장과 동시에 갑호경계령을 내려 긴장 모드로 들어가야 하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손님이기도 하다. 왜냐니까 그가 원하는 옆머리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될 때까지 수정의 수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 작업을 할 적마다 손님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이중고를 겪다 보니 늘 진이 빠진다. 물론 그런 깎새 노고를 잘 알기에 커피값이라고 의뭉을 떨며 거스름돈을 안 받는 센스를 발휘하긴 하지만.
정년을 훌쩍 넘겨서까지 퇴직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회사 오너도 인정하는 기술력이라고 자평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는 들어도 잘 몰라서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회사에 기여하는 대가로 얼마를 받는지는 몰라도 행동거지며 말투에서 주머니 두둑한 사람한테서만 풍기는 여유만만은 부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그런가, 자기를 꾸미는 데 드는 비용에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눈치다. 머리는 말할 것도 없고 비슷한 또래에 섞여 있음 금세 도드라질 만큼 세련되고 유니크한 입성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초로가 소화해 내기엔 벅찬 디자인의 운동화를 장착한 걸 값으로 치자면 꽤나 만만찮을 텐데 별로 개의치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갈 바는 단골 of 단골이 깎새 점방을 콕 지정한 까닭이 요금이 싸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을 그나마 얼추 맞춰줄 줄 아는 프로페셔널이라 그렇다는 점에서 깎새는 자뻑의 도가니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꾸미고 다니는 게 다만 젊게 보이고 싶어 그런 건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지 깎새는 모른다. 농담 삼아 슬쩍슬쩍 비치는 사설로 속내를 유추해 보면 썩 순수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무릇 인간이라는 동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성한테 깔롱지기고 싶은 욕구야 본능적이니까. 이왕이면 젊고 발랄하게 보임으로써 호감 뿐 아니라 성적 매력까지 어필할 수 있다면 뭐든 마다하랴. 그 뒤의 일은 당사자들끼리 알아서들 하시고.
요즘엔 제법 친해졌다고 점방 문 열고 손님이 등장하면, "깔롱쟁이 납셨네요?" 아는 척을 하면, "마이 늘었네 원장" 받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