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음

by 김대일

설날 새벽 일어나 습관적으로 좌변기에 앉았지만 신호가 전혀 없는 까닭을 깎새가 모를 리 없다. 화요일은 휴무일이지만 명절 대목 사이에 끼면 쉬지 않고 영업을 연달아 이어나가는 탓에 지난 수요일로부터 일주일 내도록 대중없이 밀려드는 대목 손님을 혼자 다 감당하느라 시쳇말로 피똥을 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진이 다 빠졌다. 대목 2~3주 전까지 파리만 날리다가 막판에 손님이 몰렸다 한들 헐빈한 월초 매상을 벌충할 뿐 나을 게 없는 고로 일전에 밝혔듯 돈은 안 되고 몸만 축나는 식소사번食少事煩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진이 빠지면 쾌변을 방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된 몸뚱아리 뜨뜻한 아랫목에다 지지고 싶을 뿐 다른 무엇도 하기 싫다. 하여 오늘 올려야 할 글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의 탈을 쓰고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짓이 매일 글 올리는 건데 이를 방기하면 스스로 사람이 아님을 자인하는 꼴이라서 일이관지하는 차원에서 어떡하든지 오늘 글을 매조지기로 마음 먹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20분째 좌변기에 앉아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봤지만 무얼 써야 할지 도통 떠오르지 않는데다 기력까지 달리니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사숙하는 고故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남겼던 좋은 말과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음할까 한다. 선생을 들먹거리니 전라남도 말투로 "공산주의자 신영복 책을 읽는 너도 같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며 희번덕거리던 노인이 별안간 떠오른다. "존경하는 선생 책을 내가 읽겠다는 웬 시비냐"며 대들었더니 이번 대목 때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못을 박아야 재랄을 그만 떤다.

아무튼, 몸을 일단 다스리고 봐야겠기에 얼른 마무리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 나는 자주 사람을 두 종류로 대별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당당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과 반대로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오만한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살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조합combination은 없습니다. 강한 사람한테 비굴하지만 약한 사람한테 관용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원칙 없이 좌충우돌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 미美는 글자 그대로 양羊 자와 대大 자의 회의會意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기는 먹고, 그 털과 가죽은 입고 신고, 그 기름은 연료로 사용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의 마음이 바로 미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언해두고 싶은 것이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


○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절은 사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옛말에 쉰 살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그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안전망이 되어 그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삶의 내용 자체를 인간적이고 덕성스럽게 영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말하자면 복지 문제를 삶의 문제로 포용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령공」편에 '군자모도불모식君子謀道不謀食' 그리고 '군자우도불우빈君子憂道不憂貧'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군자는 도道를 추구할 따름이며 결코 식食이나 빈貧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청빈淸貧의 예찬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이야기이며 나아가 '사람과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驚句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어요. 운동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중과의 접촉 국면을 확대하는 것,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정치 목적에 대한 합의를 모든 실천의 바탕으로 삼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의 원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난 방법론으로서 검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더 좋은 잔디를 찾다가 결국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마는 역마驛馬의 유랑(流浪도 그것을 미덕이라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직은 달팽이의 보수保守와 칩거蟄居를 선택하는 나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마살에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며 바다로 나와 버린 물은 꼴짜기의 시절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옷자락을 적셔 유리창을 닦고 마음 속에 새로운 것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준비가 곧 자기를 키워나가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치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작가의 이전글말을 접지 말고 구기지도 말고 펴서 내질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