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짧은 소설들이 즐비한 성석제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강, 2006 개정판)에서 두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소설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한다지만 짧다고 결코 함량 미달이 아닌 건 분명하다.
파이팅
골볼(Goal Ball)을 아십니까? 한 팀 각 세 명의 선수가 번갈아가며 볼링처럼 공을 굴려 상대의 골문으로 보내는데 미식축구처럼 각자의 진영 맨 뒤의 라인 전부가 골문이 됩니다. 공은 농구공만한데 꽤 무거운가 봅니다. 공이 굴러오면 골키퍼처럼, 또는 볼링핀처럼 쓰러지며 몸을 던져 공을 막는 게 수비 방법입니다.
페널티 킥 같은 벌칙도 있습니다. 이때는 규칙을 어긴 선수 한 사람만이 골문을 지키게 되지요. 다행히 골문은 축구장처럼 넒은 것은 아니고 배구 경기장만합니다. 불행하게도 혼자 지키기에는 너무 넓습니다. 그러니 반칙을 하지 않는 게 좋겠죠. 반칙 가운데 흔한 것이 경기 중에 안대를 벗는 것입니다. 네, 선수들은 경기 중에 안대를 쓰고 있습니다. 희한하죠? 고의로 벗는 게 아닌 경우, 곧 벗겨진 경우에는 심판이 시합을 중단시키고 안대를 제대로 쓰게 하죠. 물론, 심판도 있습니다. 뭐 없는 게 없죠.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중계하는 걸 보니까 해설자까지 있더군요.
골볼 전문가인 해설자의 말에 따르면 이 경기에서 열 골 차가 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다만 국제 경기에서는 세 골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는군요. 국제 경기? 아이들의 놀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이 경기에도 국가 대표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작전 시간도 있어요. 작전 시간에는 감독이 선수들을 다그치기도 하지요. 왜 조금 더 빨리, 더 힘 있게, 더 부지런히 움직이지 못하니! 선수들은 안대를 벗고 묵묵히 땀을 흘리면서 감독의 욕을 먹습니다.
경기를 할 때 선수들은 쉴새없이 파이팅을 외칩니다. 공을 굴리기 전에, 공을 막은 다음, 한 골을 넣은 다음, 먹은 다음에도 마찬가집니다. 별것도 아닌 경기에서 지겨울 정도로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입니다. 뭐 말도 못할 정도로 시끄럽지요. 그래서 채널을 돌리려다가 들으니 이런 말이 들립디다.
선수들 대부분은 약시이거나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나마 안대를 끼면 완전히 깜깜해지겠지요. 그런 그들에게 "파이팅!"은 '나 여기 있다'는 서로에 대한 신호지요.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에서 완벽한 어둠으로 뛰어든 사람들끼리의 존재 확인일 겁니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경기가 오래 진행될수록 선수들의 목이 잠기더군요.
오래 보다 보면 눈에서 절로 눈물이 나는, 선수와 함께 관중도 목이 잠기는 골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