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뭐하냐고? 당신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이발하고 염색하고 있지. 3~40분쯤 뒤에 내가 연락할게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오그라드는 애정 공세를 서슴지 않던 중늙은이는 듣기 민망해서 괜히 먼 산만 바라보는 깎새가 의식됐는지 통화가 끝나자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실토를 했다.
"여자친구가 기다리는 걸 싫어해서리."
제 딴에는 배우자와 사별한 뒤 적적한 심사를 달래는 데는 친구, 특히 여자친구만 한 존재가 없다며 꼴답잖게 오지랖을 떨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에 뒤통수 한 방 제대로 얻어 맞는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가 아니면 쉽사리 영접하기 힘든 응큼한 눈빛으로 미혹하기 짝이 없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듯,
"마누라는 집에 있지. 어느 미친 놈이 마누라하고 그렇게 통화한대? (새끼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리더니)여자친구면 몰라도."
같은 노인이기도 한 여자친구는 마누라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유부남인 줄 잘 알고 있댔다. 숨기는 거 없이 다 아는 사이가 되니 더 대담해졌고, 보통은 문자로 접선일을 정하지만 어떨 땐 마누라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통화가 자연스럽다. 그렇게 만나 가끔 몸도 푼다나. 부부가 한집에 살아도 서로를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니 걸리적거릴 게 없다고 뻔뻔하게 덧붙였다.
정말 궁금해 미칠 노릇이라서 실례를 무릅쓰고 물었다.
"혹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모님 반응이 어떨까요?"
현장에서 들킨 도둑놈 얼굴인 양 아연실색하더니,
"미쳤어요 발각되게!"
발각되면 경악할 짓을 왜 하는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중늙은이가 자리를 뜨고 나서 깎새는 짐짓 심각하게 자문했다.
바람을 피면 어떤 느낌일까?
바람은 보안 유지와 동의어이고 보안 유지에는 잔꾀와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음탕한 정사에 놀아나 안 그래도 신경써야 할 게 한 보따리에 굳이 염려 한 짐을 더 얹고 없어서 못 쓰는 돈까지 축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거짓말 같겠지만 피로감부터 확 밀려 왔다. 일일이 만전을 기하는 것처럼 고된 정신 노동도 없다. 만사가 귀찮은 것이다. 귀차니즘이 불순한 잡념을 잡아 먹은 택이다.